차정인 ‘독서만 해도 충분’ 발언 해명…“서·논술형 사교육, 안일하게 생각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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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8-18 07:14본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할 경우 독서만으로도 준비가 충분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이 “공교육에서 충분히 대비할 것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차 위원장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제8차 회의 모두발언에서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사교육 현상을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결코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사교육이 첫 번째 걱정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차 위원장은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서·논술형 평가가 또 다른 사교육을 낳을 수 있다는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지적에 “시험의 기술적인 요소는 공교육에서 충분히 다 익혀나갈 수 있다”며 “학생들은 폭넓게 독서해두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 등을 중심으로 사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차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동시에 서·논술형 평가체제로의 개편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제도 개편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오지선다 객관식 교육이 지속될 것”이라며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변화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서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차 위원장은 “독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폭넓은 독서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면 미래 진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교위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국민 공론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국교위는 ‘내신 및 수능 서·논술형 평가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국민참여위원회 숙의를 오는 29~30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입제도 개편 방향과 내신·수능의 서·논술형 평가체제 전환에 대한 온라인 의견수렴도 실시한다.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국교위 국민의견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현장 의견수렴도 이어간다. 국교위는 지난 11일 인천에서 현장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는 20일 전남광주, 26일 대구에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전무곤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와 관련해 대검찰청 등 검찰청 4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종합특검은 13일 심 전 총장과 전 전 부장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와 관련해 대검과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청주지검을 압수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2024년 12월3일 불법계엄 당시 대검 연구관들이 사용한 컴퓨터와 대검 정보통신과에서 생성·변경된 전자정보 등이 포함됐다.
심 전 총장은 불법계엄 선포 직후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부) 구성에 협조하고 검사를 파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검사 파견 방안을 검토·지시하는 등 계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심 전 총장은 계엄 당시 박 전 장관과 세차례 통화하며 ‘공공수사부 검사와 과학수사 담당 수사관 등을 합수부에 파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소관 부서에 관련 사항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종합특검은 심 전 총장이 당시 대검에 ‘비상계엄 하 재판 관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었던 전 전 부장은 심 전 총장을 보좌하며 해당 문건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문건에는 계엄 상황에서 재판·수사권을 계엄사령부와 군사법원 중심으로 전환·조정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종합특검은 이 문건을 검찰이 내란에 협조한 증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앞서 종합특검은 지난달 16일 심 전 총장과 전 전 부장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한일 대중음악사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368쪽 | 2만2000원
한국 기획사 어도어가 만든 다국적 걸그룹 뉴진스는 2024년 6월 일본 도쿄돔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호주와 베트남 복수국적을 가진 멤버 하니가 일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작 ‘푸른 산호초’를 부른 장면이었다. 1980년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금지돼 있었기에, ‘푸른 산호초’는 당시 한국인들이 몰래 찾아 들어야 하는 노래였다.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원 교수인 김성민은 이 공연을 “금지되었던 제이팝이 ‘케이팝의 시대’에 소환되어 수십 년 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새롭게 환기”한 상징적 무대였다고 본다.
한일 양국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만큼 대중음악의 교류도 단선적이지 않았다. “사람과 물자의 초국적 이동,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 그리고 음악산업과 미디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한일 대중음악사>는 2024년 일본에서 출간돼 호평받았고,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다시 옮긴 책이다.
1965년 한국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된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이듬해 7월 일본의 텔레비전쇼에 나와 노래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서양음악을 수용·융합하여 형성된 일본 노래와 서양 및 일본음악을 함께 받아들이며 형성된 한국 노래 사이의 유사성을 단순히 ‘왜색’으로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탈일본화를 주창하는 문화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대의 검열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제도적·사회적으로 계승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불가능했던 시기에 양국의 대중음악은 각기 다른 궤적을 그렸다. 양국의 ‘정치적·경제적 시간차’가 음악에 작용한 것이다. 전공투의 시기였던 1960년대 후반 유행했던 ‘프로테스트 포크’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뒤, 일본에서는 매우 사적인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1970년대 이후 줄곧 정치의 주체였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음악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다른 한쪽에선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이었던 일본 진출을 향한 한국 음악인들의 욕망도 두드러졌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일본어 가사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끈 이성애를 시작으로 요시야 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작곡가 길옥윤, ‘디바’ 패티김, ‘아이돌’ 혜은이, 그리고 ‘가왕’ 조용필의 일본 활동이 이어졌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한국 엔카’라는 일본식 재해석 틀 안에 있었다. 한국에서 ‘팝의 여왕’이었던 패티김은 일본에서 ‘도라지타령’ ‘목포의 눈물’ 리메이크를 앞세워 활동했다. 한국에서 발라드, 록, 민요 등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던 조용필조차 일본 시장에선 자신의 넓은 음악취향을 봉인해야 했다. 일본 시장은 “일본 가수에게는 없는 폭발력과 유연함”을 가진 아시아 가수의 엔카를 찾았다.
조용필이 1988년 서울을 찾은 일본 외무대신 우노 소스케에게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지문 날인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타자’로 서로를 마주했다. 이 시기는 1980년대까지의 ‘한국 엔카’와 2000년대 이후의 ‘케이팝’의 이행기였다.
저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케이팝의 ‘원점’이라고 본다. “미국의 힙합을 내면화한 스타일 속에는 일본 사회에서 익히 공유되어온 ‘조선·한국적인 것’의 스테레오타입은 물론 일본의 영향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전곡 작사·작곡·보컬을 하고 일본 뮤지션이 편곡·엔지니어로 참여한 음반 <공무도하가>는 이 시기 ‘최대의 음악적 성과’였다. 이 음반은 한국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고, 일본의 고정관념에 맞춘 음악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한일 합작’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청중 역시 정교한 편곡, 연주, 세련된 사운드가 특징인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티 스퀘어, 카시오페아 같은 퓨전 재즈와 엑스 재팬의 록을 듣는 한국 청년들은 “일본 음악 향유가 한일이라는 특정한 문맥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에 저항했다.”
싸이, 트와이스, 블랙핑크, 그리고 BTS의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강력하다. 일본에서 국제적 스타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아시아의 이종 혼합적인 공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이미 정립된 일본 문화를 보존하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기존 틀 안에서 유지하려는 방향을 선택했다.”
제이팝과 달리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장르인 힙합을 앞장서 수용했고, SM·YG·JYP라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기획사의 경쟁을 경험했다. “일본형 아이돌이 안정적이지만 확장성이 제한된 아이돌의 지위를 확립했다면, 한국형 아이돌은 높은 확장성을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약한 양식”을 보였다. 일본 업계가 광대한 자국 시장을 겨냥한 ‘리스크 관리’에 치중했다면, 한국 업계는 세계 시장을 향한 욕망과 상상력을 발동한 것이다. 일본 시장에 한계를 느낀 일본 젊은이들이 케이팝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HKT48 멤버였다가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르세라핌으로 활동 중인 미야와키 사쿠라가 한 사례다. 한국의 대중 역시 아이묭, 후지이 가제, 요네즈 겐시, 요아소비 등 케이팝에 없는 감성을 가진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듣고 있다.
저자가 케이팝과 제이팝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한일 상호 인식의 역사서”를 표방한다.
차 위원장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제8차 회의 모두발언에서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사교육 현상을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결코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사교육이 첫 번째 걱정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차 위원장은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서·논술형 평가가 또 다른 사교육을 낳을 수 있다는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지적에 “시험의 기술적인 요소는 공교육에서 충분히 다 익혀나갈 수 있다”며 “학생들은 폭넓게 독서해두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 등을 중심으로 사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차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동시에 서·논술형 평가체제로의 개편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제도 개편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오지선다 객관식 교육이 지속될 것”이라며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변화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서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차 위원장은 “독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폭넓은 독서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면 미래 진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교위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국민 공론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국교위는 ‘내신 및 수능 서·논술형 평가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국민참여위원회 숙의를 오는 29~30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입제도 개편 방향과 내신·수능의 서·논술형 평가체제 전환에 대한 온라인 의견수렴도 실시한다.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국교위 국민의견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현장 의견수렴도 이어간다. 국교위는 지난 11일 인천에서 현장토론회를 시작으로 오는 20일 전남광주, 26일 대구에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전무곤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와 관련해 대검찰청 등 검찰청 4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종합특검은 13일 심 전 총장과 전 전 부장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와 관련해 대검과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청주지검을 압수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2024년 12월3일 불법계엄 당시 대검 연구관들이 사용한 컴퓨터와 대검 정보통신과에서 생성·변경된 전자정보 등이 포함됐다.
심 전 총장은 불법계엄 선포 직후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부) 구성에 협조하고 검사를 파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검사 파견 방안을 검토·지시하는 등 계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심 전 총장은 계엄 당시 박 전 장관과 세차례 통화하며 ‘공공수사부 검사와 과학수사 담당 수사관 등을 합수부에 파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소관 부서에 관련 사항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종합특검은 심 전 총장이 당시 대검에 ‘비상계엄 하 재판 관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었던 전 전 부장은 심 전 총장을 보좌하며 해당 문건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문건에는 계엄 상황에서 재판·수사권을 계엄사령부와 군사법원 중심으로 전환·조정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종합특검은 이 문건을 검찰이 내란에 협조한 증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앞서 종합특검은 지난달 16일 심 전 총장과 전 전 부장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한일 대중음악사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368쪽 | 2만2000원
한국 기획사 어도어가 만든 다국적 걸그룹 뉴진스는 2024년 6월 일본 도쿄돔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호주와 베트남 복수국적을 가진 멤버 하니가 일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작 ‘푸른 산호초’를 부른 장면이었다. 1980년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금지돼 있었기에, ‘푸른 산호초’는 당시 한국인들이 몰래 찾아 들어야 하는 노래였다.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원 교수인 김성민은 이 공연을 “금지되었던 제이팝이 ‘케이팝의 시대’에 소환되어 수십 년 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새롭게 환기”한 상징적 무대였다고 본다.
한일 양국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만큼 대중음악의 교류도 단선적이지 않았다. “사람과 물자의 초국적 이동,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 그리고 음악산업과 미디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한일 대중음악사>는 2024년 일본에서 출간돼 호평받았고,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다시 옮긴 책이다.
1965년 한국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된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이듬해 7월 일본의 텔레비전쇼에 나와 노래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서양음악을 수용·융합하여 형성된 일본 노래와 서양 및 일본음악을 함께 받아들이며 형성된 한국 노래 사이의 유사성을 단순히 ‘왜색’으로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탈일본화를 주창하는 문화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대의 검열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제도적·사회적으로 계승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불가능했던 시기에 양국의 대중음악은 각기 다른 궤적을 그렸다. 양국의 ‘정치적·경제적 시간차’가 음악에 작용한 것이다. 전공투의 시기였던 1960년대 후반 유행했던 ‘프로테스트 포크’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뒤, 일본에서는 매우 사적인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1970년대 이후 줄곧 정치의 주체였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음악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다른 한쪽에선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이었던 일본 진출을 향한 한국 음악인들의 욕망도 두드러졌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일본어 가사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끈 이성애를 시작으로 요시야 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작곡가 길옥윤, ‘디바’ 패티김, ‘아이돌’ 혜은이, 그리고 ‘가왕’ 조용필의 일본 활동이 이어졌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한국 엔카’라는 일본식 재해석 틀 안에 있었다. 한국에서 ‘팝의 여왕’이었던 패티김은 일본에서 ‘도라지타령’ ‘목포의 눈물’ 리메이크를 앞세워 활동했다. 한국에서 발라드, 록, 민요 등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던 조용필조차 일본 시장에선 자신의 넓은 음악취향을 봉인해야 했다. 일본 시장은 “일본 가수에게는 없는 폭발력과 유연함”을 가진 아시아 가수의 엔카를 찾았다.
조용필이 1988년 서울을 찾은 일본 외무대신 우노 소스케에게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지문 날인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타자’로 서로를 마주했다. 이 시기는 1980년대까지의 ‘한국 엔카’와 2000년대 이후의 ‘케이팝’의 이행기였다.
저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케이팝의 ‘원점’이라고 본다. “미국의 힙합을 내면화한 스타일 속에는 일본 사회에서 익히 공유되어온 ‘조선·한국적인 것’의 스테레오타입은 물론 일본의 영향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전곡 작사·작곡·보컬을 하고 일본 뮤지션이 편곡·엔지니어로 참여한 음반 <공무도하가>는 이 시기 ‘최대의 음악적 성과’였다. 이 음반은 한국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고, 일본의 고정관념에 맞춘 음악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한일 합작’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청중 역시 정교한 편곡, 연주, 세련된 사운드가 특징인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티 스퀘어, 카시오페아 같은 퓨전 재즈와 엑스 재팬의 록을 듣는 한국 청년들은 “일본 음악 향유가 한일이라는 특정한 문맥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에 저항했다.”
싸이, 트와이스, 블랙핑크, 그리고 BTS의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강력하다. 일본에서 국제적 스타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아시아의 이종 혼합적인 공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이미 정립된 일본 문화를 보존하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기존 틀 안에서 유지하려는 방향을 선택했다.”
제이팝과 달리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장르인 힙합을 앞장서 수용했고, SM·YG·JYP라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기획사의 경쟁을 경험했다. “일본형 아이돌이 안정적이지만 확장성이 제한된 아이돌의 지위를 확립했다면, 한국형 아이돌은 높은 확장성을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약한 양식”을 보였다. 일본 업계가 광대한 자국 시장을 겨냥한 ‘리스크 관리’에 치중했다면, 한국 업계는 세계 시장을 향한 욕망과 상상력을 발동한 것이다. 일본 시장에 한계를 느낀 일본 젊은이들이 케이팝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HKT48 멤버였다가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르세라핌으로 활동 중인 미야와키 사쿠라가 한 사례다. 한국의 대중 역시 아이묭, 후지이 가제, 요네즈 겐시, 요아소비 등 케이팝에 없는 감성을 가진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듣고 있다.
저자가 케이팝과 제이팝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한일 상호 인식의 역사서”를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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