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이혼전문변호사 “미국 양보해야 호르무즈 재개방”···미국 향해 도박 내세운 이란의 자신감, 언제까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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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8-09 23:37본문
안양이혼전문변호사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조건으로 미군 철수와 전쟁 피해 배상 등 미국의 대대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란이 계속해서 이러한 강경한 태도를 내세우는 데에는 현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협상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지도부의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8일(현지시간) 이란 지도부가 미국과 협상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모하마드 바게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 종료, 경제 제재 해제, 동결 자산 반환, 전쟁 피해 배상, 이란 및 동맹 세력에 대한 공격 중단, 이란 주변 지역 미군 철수 등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지난 6월 이슬라마바드에서 체결된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보다 더 광범위한 정치·군사·경제적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란 의회 의장의 전략 고문 마흐디 모하마디는 SNS에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지만 전쟁의 끝은 결코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며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항상 우리가 결정한다”고 썼다.
이란이 지금과 같이 강경 입장을 내세우며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향후 핵 협상에서도 해협 통제권은 이란의 주요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란의 분석가인 모스타파 나자피는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은 억지력을 행사하고 지역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안보 질서를 재편하는 전략적 지렛대가 됐다”고 말했다.
대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며 미국은 핵심 무기 재고가 소진되고 국내 여론이 악화하는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참모들에게 이란 전쟁에서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주요 행정부 인사들도 확전에 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란의 이러한 전략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후 위협과 협상 재개를 오가는 발언을 반복하면서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공습을 재개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이란의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분석가 라흐만 가흐레만푸르는 “이란은 이 전략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 어느 시점에는 미국과 합의에 도달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경제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란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전날 “지금이 합의에 도달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며 “영원히 싸울 수는 없다. 언젠가는 끝내야 할 때가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주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인공지능(AI)이 코딩, 번역, 디자인은 물론 연구, 창작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능력은 무엇인가?”
“AI 에이전트가 사람 대신 회의하고, e메일을 쓰고,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까지 왔다. 앞으로 직장에서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학생들이 ‘이건 AI에게 시키면 되는데 왜 공부해야 하죠?’라고 묻는다. 그럼에도 인간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지식과 훈련은 무엇이라고 보나?”
질문들이 공유하는 문법은 하나다. “당신은 여전히 쓸모 있는가?” 그 쓸모의 판정기준이 모두 AI, 인공지능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의 목록이 곧 인간의 정의가 된다. 말하자면 잔여가치론이다. 인간을 기계의 나머지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기계가 나아질 때마다 인간이 줄어든다. 정의 자체가 자기잠식적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가치를 인공지능의 성능 곡선에 종속시키는 문장이다.
산업사회 공장 ‘일꾼’ 규정서AI가 못할 것을 하는 존재로인간을 ‘잔여 가치’ 보는 시선‘쓸모’ 넘는 생각을 해야 할 때
다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의 학교는 산업시대의 고안품이다. 산업사회의 만트라는 규격화, 표준화, 대량생산이다. 학교는 공장과 거울처럼 대응한다. 위계가 있고, 생산라인의 분업에 조응하는 개별과목들이 있다. 공장에 일 자체의 만족이 아니라 임금·상여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있는 것처럼, 학교에는 공부 자체의 즐거움 대신 성적·상벌과 같은 보상이 있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을 할수록 학교는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공장에서 가장 중요히 쓰일 가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주어진 질문들은 모두 산업사회의 질문들이다. 사람의 ‘쓸모’를 묻는다. 그 ‘쓸모’는 말하자면 일꾼으로서의 쓸모다. 공장을 위한 쓸모다. 가치가 언제나 사람의 바깥에 있다.
1958년에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다. 해나 아렌트는 그해 펴낸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한다. 근대는 인간의 노동을 오로지 생존을 위한 소모적 반복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동화는 노동의 사슬로부터 해방되려는 노동자들의 사회를 낳는데, 그 사회는 이제 그 자유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줄, 더 높고 의미 있는 활동들을 알지 못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셋으로 나눴다. 생존을 위한 노동(labor), 나보다 오래 남을 어떤 것을 만드는 작업(work),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행위(action). ‘근대는 이 셋을 노동 하나로 뭉개버렸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소모적 반복 외에 다른 더 높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할 방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한복판이던 1930년,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강연에서 100년 뒤 인류가 누릴 지극히 풍요로운 미래를 예측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케인스는 당대의 비관이 과잉이라고 얘기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기술적 실업’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노동 사용을 절약하는 수단을 발견하는 속도가, 노동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속도를 앞지름으로써 생기는 실업.” 말하자면 AI 실업 논의의 원형이 여기 있는 셈이다.
케인스는 100년 뒤 진보한 나라들의 생활수준은 지금의 4배에서 8배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인류는 전통적 목적을 잃는다. “그리하여 창조 이래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진짜 문제, 항구적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절박한 경제적 근심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과학과 복리가 그에게 벌어다준 여가를 어떻게 채워서 지혜롭고 유쾌하게 잘 살 것인가?”
그는 흔히 주 15시간 노동을 주창한 사람으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정확히 이러하다. “하루 3시간 교대나 주 15시간 노동이면 이 문제를 꽤 오랫동안 미뤄둘 수 있을 것이다. 하루 3시간이면 우리 대부분 안에 있는 옛 아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니까.” 15시간은 단지 ‘유예’였다.
그의 강연은 이런 낙관론으로 매듭지어진다. “우리는 다시 한번 수단보다 목적을 귀하게 여기고, 쓸모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을 택하게 될 것이다.” 케인스가 말한 100년 뒤가 바로 2030년이다. 4년 남았다. 그때 우리는 쓸모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을 택하게 될 수 있을까?
미국 정치의 지각을 흔들고 있는 민주사회주의(DSA)의 강력한 우군은 밀레니얼들과 Z세대들이다. 이들이 DSA 돌풍의 진원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일 치러진 미시간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선 DSA의 지원을 받은 압둘 엘사예드 후보가 4선 현역 하원의원을 꺾고 승리했다. 민주당 텃밭에 이은 경합주에서의 승리는 지지층을 넘어 대중을 향해 나아가는 증거인 만큼 더는 이례적 현상으로 넘길 수도 없게 됐다. 미국 사회의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다시 정치의 언어로 끌어낸 DSA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파고들며 약진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DSA 현상은 미국에서 ‘자유주의 주류 정치’의 퇴조를 예감하게 한다. 민주·공화 양당의 정책적 차이가 희미해져 금권 아니면 추문뿐인 미국 정치판에서 민주당 주류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젊은 세대에게 이들의 이미지는 위선과 무기력이다. 압둘 엘사예드는 “민주당의 문제는 옳은 말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쉽게 매수당한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기업 후원금 논란 속에 트럼프의 ‘기득권 대 서민’ 프레임에 패배할 때 전조는 확연했다.
미국 젊은 세대와 DSA의 동행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10·20대 시절 금융위기(2008년)를 겪었고, 인공지능(AI)이라는 ‘신존재(New Being)’로부터 실존적 위협을 느끼는 첫 인류라는 점이다. 의식 근저에는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자산 격차,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이 깊게 자리한다. DSA가 ‘생활물가’(조란 맘다니) 같은 정책공약으로 기존 양당의 ‘무색무취’를 격파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기성 정치가 그들 미래의 어떤 등대도 되어주지 못할 때, 그들은 DSA라는 횃불을 들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2030세대로부터 ‘내로남불’과 기득권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현실은 닮아 있다. 이를 모르지 않는 듯 더불어민주당은 8·17 전당대회에서 청년을 화두로 내세웠지만, 단 한 명 선출직 최고위원 후보도 없는 정치적 치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래선 머지않아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청년들의 말이 칼이 되어 날아들지 않겠는가.
AP통신은 8일(현지시간) 이란 지도부가 미국과 협상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모하마드 바게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 종료, 경제 제재 해제, 동결 자산 반환, 전쟁 피해 배상, 이란 및 동맹 세력에 대한 공격 중단, 이란 주변 지역 미군 철수 등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지난 6월 이슬라마바드에서 체결된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보다 더 광범위한 정치·군사·경제적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란 의회 의장의 전략 고문 마흐디 모하마디는 SNS에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지만 전쟁의 끝은 결코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며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항상 우리가 결정한다”고 썼다.
이란이 지금과 같이 강경 입장을 내세우며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향후 핵 협상에서도 해협 통제권은 이란의 주요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란의 분석가인 모스타파 나자피는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은 억지력을 행사하고 지역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안보 질서를 재편하는 전략적 지렛대가 됐다”고 말했다.
대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며 미국은 핵심 무기 재고가 소진되고 국내 여론이 악화하는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참모들에게 이란 전쟁에서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주요 행정부 인사들도 확전에 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란의 이러한 전략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후 위협과 협상 재개를 오가는 발언을 반복하면서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공습을 재개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이란의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분석가 라흐만 가흐레만푸르는 “이란은 이 전략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 어느 시점에는 미국과 합의에 도달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경제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란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전날 “지금이 합의에 도달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며 “영원히 싸울 수는 없다. 언젠가는 끝내야 할 때가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주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인공지능(AI)이 코딩, 번역, 디자인은 물론 연구, 창작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능력은 무엇인가?”
“AI 에이전트가 사람 대신 회의하고, e메일을 쓰고,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까지 왔다. 앞으로 직장에서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학생들이 ‘이건 AI에게 시키면 되는데 왜 공부해야 하죠?’라고 묻는다. 그럼에도 인간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지식과 훈련은 무엇이라고 보나?”
질문들이 공유하는 문법은 하나다. “당신은 여전히 쓸모 있는가?” 그 쓸모의 판정기준이 모두 AI, 인공지능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의 목록이 곧 인간의 정의가 된다. 말하자면 잔여가치론이다. 인간을 기계의 나머지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기계가 나아질 때마다 인간이 줄어든다. 정의 자체가 자기잠식적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가치를 인공지능의 성능 곡선에 종속시키는 문장이다.
산업사회 공장 ‘일꾼’ 규정서AI가 못할 것을 하는 존재로인간을 ‘잔여 가치’ 보는 시선‘쓸모’ 넘는 생각을 해야 할 때
다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의 학교는 산업시대의 고안품이다. 산업사회의 만트라는 규격화, 표준화, 대량생산이다. 학교는 공장과 거울처럼 대응한다. 위계가 있고, 생산라인의 분업에 조응하는 개별과목들이 있다. 공장에 일 자체의 만족이 아니라 임금·상여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있는 것처럼, 학교에는 공부 자체의 즐거움 대신 성적·상벌과 같은 보상이 있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을 할수록 학교는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공장에서 가장 중요히 쓰일 가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주어진 질문들은 모두 산업사회의 질문들이다. 사람의 ‘쓸모’를 묻는다. 그 ‘쓸모’는 말하자면 일꾼으로서의 쓸모다. 공장을 위한 쓸모다. 가치가 언제나 사람의 바깥에 있다.
1958년에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다. 해나 아렌트는 그해 펴낸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한다. 근대는 인간의 노동을 오로지 생존을 위한 소모적 반복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동화는 노동의 사슬로부터 해방되려는 노동자들의 사회를 낳는데, 그 사회는 이제 그 자유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줄, 더 높고 의미 있는 활동들을 알지 못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셋으로 나눴다. 생존을 위한 노동(labor), 나보다 오래 남을 어떤 것을 만드는 작업(work),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행위(action). ‘근대는 이 셋을 노동 하나로 뭉개버렸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소모적 반복 외에 다른 더 높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할 방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한복판이던 1930년,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강연에서 100년 뒤 인류가 누릴 지극히 풍요로운 미래를 예측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케인스는 당대의 비관이 과잉이라고 얘기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기술적 실업’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노동 사용을 절약하는 수단을 발견하는 속도가, 노동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속도를 앞지름으로써 생기는 실업.” 말하자면 AI 실업 논의의 원형이 여기 있는 셈이다.
케인스는 100년 뒤 진보한 나라들의 생활수준은 지금의 4배에서 8배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인류는 전통적 목적을 잃는다. “그리하여 창조 이래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진짜 문제, 항구적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절박한 경제적 근심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과학과 복리가 그에게 벌어다준 여가를 어떻게 채워서 지혜롭고 유쾌하게 잘 살 것인가?”
그는 흔히 주 15시간 노동을 주창한 사람으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정확히 이러하다. “하루 3시간 교대나 주 15시간 노동이면 이 문제를 꽤 오랫동안 미뤄둘 수 있을 것이다. 하루 3시간이면 우리 대부분 안에 있는 옛 아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니까.” 15시간은 단지 ‘유예’였다.
그의 강연은 이런 낙관론으로 매듭지어진다. “우리는 다시 한번 수단보다 목적을 귀하게 여기고, 쓸모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을 택하게 될 것이다.” 케인스가 말한 100년 뒤가 바로 2030년이다. 4년 남았다. 그때 우리는 쓸모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을 택하게 될 수 있을까?
미국 정치의 지각을 흔들고 있는 민주사회주의(DSA)의 강력한 우군은 밀레니얼들과 Z세대들이다. 이들이 DSA 돌풍의 진원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일 치러진 미시간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선 DSA의 지원을 받은 압둘 엘사예드 후보가 4선 현역 하원의원을 꺾고 승리했다. 민주당 텃밭에 이은 경합주에서의 승리는 지지층을 넘어 대중을 향해 나아가는 증거인 만큼 더는 이례적 현상으로 넘길 수도 없게 됐다. 미국 사회의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다시 정치의 언어로 끌어낸 DSA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파고들며 약진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DSA 현상은 미국에서 ‘자유주의 주류 정치’의 퇴조를 예감하게 한다. 민주·공화 양당의 정책적 차이가 희미해져 금권 아니면 추문뿐인 미국 정치판에서 민주당 주류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젊은 세대에게 이들의 이미지는 위선과 무기력이다. 압둘 엘사예드는 “민주당의 문제는 옳은 말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쉽게 매수당한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기업 후원금 논란 속에 트럼프의 ‘기득권 대 서민’ 프레임에 패배할 때 전조는 확연했다.
미국 젊은 세대와 DSA의 동행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10·20대 시절 금융위기(2008년)를 겪었고, 인공지능(AI)이라는 ‘신존재(New Being)’로부터 실존적 위협을 느끼는 첫 인류라는 점이다. 의식 근저에는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자산 격차,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이 깊게 자리한다. DSA가 ‘생활물가’(조란 맘다니) 같은 정책공약으로 기존 양당의 ‘무색무취’를 격파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기성 정치가 그들 미래의 어떤 등대도 되어주지 못할 때, 그들은 DSA라는 횃불을 들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2030세대로부터 ‘내로남불’과 기득권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현실은 닮아 있다. 이를 모르지 않는 듯 더불어민주당은 8·17 전당대회에서 청년을 화두로 내세웠지만, 단 한 명 선출직 최고위원 후보도 없는 정치적 치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래선 머지않아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청년들의 말이 칼이 되어 날아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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