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단도직입]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조용한 중도의 매서운 민심 확인…이제 정부·여당 평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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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6-20 07:40본문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를 지난 9일 경향신문에서 만났다. 강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가 한국정치의 ‘변곡점’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야당이 ‘정치적 신뢰 회복에 실패’한 결과라고 진단하면서도 “내란 청산이 더 이상 안 먹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예외적 정치의 시간이 가고 평상적 정치로 넘어”가면서 민심의 정치적 평가가 이제 힘을 가진 정부·여당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정치적 실체는 평소 조용하지만 투표장에선 매서웠던 ‘중도’라고 했다. 그래서 이 ‘합리적 다수를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향후 한국정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6·3 지방선거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결과를 예상하신 건가요.
“두 정당 모두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많이 얻긴 했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졌고, 특히 서울시에서 진 건 정치적 의미가 큽니다. 국민의힘이 혁신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정도 성과인 건 민주당이 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대구에서도 겨우 이긴 거 아니에요? 전통적으로 지지 기반이던 지역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에 ‘겸손하고 절제하라’는 메시지가 간 것 같고, 야당에는 ‘아직 우리가 정치적 신뢰를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 같습니다.”
- 여당과 야당, 어디가 더 긴장해야 할까요.
“사실 여당이 긴장해야죠. 정치적 평가라는 게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한테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내란 청산’ 슬로건이 더 이상 안 먹히고 있다는 거예요. 바꿔 이야기하면 정부·여당이 누려온 정치적 혜택은 사라졌고, 이재명 정부가 평가 대상이 됐다는 겁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변곡점이 된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보면 여권 입장에선 2년 뒤 총선이나 다음 대선이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그 생각이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지난번(2024년) 국회의원 선거랑 이번 지방선거의 서울지역 득표율을 봤더니 빨간색이 많이 늘어났어요. 확실히 확대됐어요. 그동안 민주당이 수도권 압승을 통해 의회 권력을 장악해왔는데 이런 추세라면 2년 뒤에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여권이 긴장해서 (민심을) 보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 어떤 모습을 보고 국민이 여당을 좀 견제해야겠다 생각하게 된 걸까요.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굉장히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정치 흐름을 이끌어온 게 양쪽 모두 강성 지지층이었어요. 그런데 그들 사이에 더 많은 수의 조용한 중도가 있었던 겁니다. 입을 다물고 있던 그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왔고, 표로 정치적 뜻을 표시한 겁니다. 야당일 땐 상관없지만 권력을 잡았으면 정국을 원만하게 이끌고 가야 할 책임도 있는 거죠. 근데 일방주의로 가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니 좀 오만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공소취소 같은 예민한 이야기가 선거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잖아요.”
- 조용한 중도의 선택이 주효했다면 이번 선거로 ‘지지층 정치’의 한계도 드러난 것 아닐까요.
“저는 한계가 왔다고 봅니다. 결국은 확장성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정치권에) 보여졌어요. 조용하지만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이 다수를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향후 총선·대선에서 중요할 겁니다. 저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습니다.”
- 정치권이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그렇게 갈까요.
“지금부터 흥미롭게 봐야 할 건 당내 정치 같아요. 여당은 8월에 당대표 경선이 있고, 야당도 장동혁 체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기 때문에 여든 야든 내부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예외적 정치’의 시간이 지나가고 ‘평상적 정치’로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좀 피곤해하고 있잖아요. 누가 그런 부분을 어루만져주면서 정치를 복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보이느냐가 중요합니다.”
- 이재명 대통령이 그동안 협치 의지는 밝히지 않았습니까.
“야당을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야당이 대통령을 만났을 땐 정치적 타협이라든지, 쟁점 해소 같은 게 있어야 합니다. 야당 요구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통합의 리더십이 나올 수 있어요. (이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이번 선거 때도 그랬지만 (야당을 향해) ‘그들’이라고 이야기하며 ‘우리’와 나누는 메시지를 자꾸 냅니다. 이 대통령 지지율도 이전처럼 편안하게 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 당장 대통령이 통합적 리더십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은 선관위 이슈 아닌가요. 선관위라는 게 정치적 경쟁의 공정함을 관리하는 곳이잖아요. 이 대통령이 대법원장 등 4부 요인을 만났지만, 여야가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중재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여야 모두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큰 부담 없이 던질 수 있는 의제잖아요. 야당도 그거 안 받을 수 있나요? 정치적 부담이 덜한 사안부터 여야가 접근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안으로 확대될 여지도 많죠.”
- 선거 내내 국민의힘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선거 후에도 장동혁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고나왔어요. 자칫 이번 결과를 국민의힘이나 보수 정치가 오도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장 대표가 유세 지원을 간 곳은 다 떨어졌잖아요. 강세지역이라 믿었던 곳에서도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위기감이 커야 합니다. 이런 결과를 오독한다면 보수가 근본적으로 재편하든지 새로운 정당이 나오든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잘만 변화한다면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기대감은 가질 수 있습니다. 윤어게인이라든지 부정선거 음모론 같은 데 계속 머물러선 어렵죠.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보수 가치가 나와야 합니다.”
- 어떤 것이 보수 정치 재건을 위한 가치가 될 수 있습니까.
“보수가 오늘날 이야기를 한 게 별로 없어요. 박정희나 옛날 산업화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국가 발전과 관련되거나 사회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떤 미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지 못해요. 문재인·이재명 정부의 일방주의를 보기 싫은 사람들만 남아 있는 거지 보수 자체의 매력은 없어요. 그게 특히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이 약한 이유입니다. 주거, 직업, 교육, 교통 문제까지 수도권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적 고민을 제일 많이 갖고 있잖아요.”
- 사실 국민들은 진보도 그닥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학부 학생들이랑 저녁을 같이했는데 그러더라고요. 진보, 보수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이 봤을 때는 다 ‘세대적 기득권’ 느낌이 강한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과 인스타그램을 같이 하는데, 주로 여행이나 먹는 사진을 올리다가 최근에 성명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이번 선관위 건이 2030들을 정치적으로 자각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학생들이 더 엄중한 비상계엄 때도 이렇게 반응을 했나?’ 하는 의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때 상황이 학습이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학생들이 처음 경험해본 정치적 격변이었잖아요. 계엄 한 사흘 뒤인가 정치학부에서 집담회를 하는데 400~500명의 학생이 왔어요. 그때부터 이런 정치적 문제에 대해 처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게 이번에 좀 더 자유로운 형태로 표출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계엄이 정치적 자각 계기가 돼 이번에 행동한 거면 제2·제3의 다른 정치적 행동도 나올 수 있다는 건가요.
“정치 참여나 그런 면에서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2년 뒤 총선부터는 대폭적인 세대교체가 불가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흐름에서 보면 항상 우리가 비슷하게 가거든요. 요즘 젠지(Z세대)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네팔도 그렇고 많은 나라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젠지가 정치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강 교수는 인터뷰 중간중간 젊은 세대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을 오래 굳은 양극화 정치를 바꿀 대안으로 여기는 듯했다.
-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어떠셨습니까.
“이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은 변화가 없겠구나, 만기친람이 계속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성숙 총리 후보 지명을 보면서 권한을 이양하거나 책임을 맡기는 건 제한적일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년을 보면 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일 처리하는 사람이지 국무위원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나 말고는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그렇다면 2년 차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가 주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성과가 이제 나와야 합니다. 정치적 다툼보다는 이재명 정부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고민을 해야 될 때예요. 그러니까 지난 1년과 차이 없이 만기친람으로 일상적인 모든 일에 대통령이 대응하는 방식이 좋은 것이냐는 거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고, 이제부터는 미래 비전을 향해 나아간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죠. 기자회견에서 그런 게 잘 안 보였던 것 같아요.”
- 비상계엄 이후 민주주의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게 출발점입니다. 민주화됐을 때 두 세력이 타협을 했습니다. 한국 민주화의 기본은 타협과 공존이란 말이에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통합의 정치로 이끈 게 한국에서 민주적 공고화가 쉽게 이루어진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적 생각에 젖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서 아군·적군을 나누는 일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기본이 돼온 정신이 몹시 취약해진 겁니다. 이번에 조사해보니까 국민의 51%가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 그래요. 그러면 정치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혼란스러워집니다.”
- 민주주의가 논의되는 게 정치의 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네요.
“정당의 언로라든지 참여 구조가 상당히 왜곡돼 있습니다. 다들 바쁘고 힘든 만큼, 정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도하게 당의 결정 구조가 개방됐습니다. 당원이 되기가 이렇게 쉬워선 안 돼요. 몇천원씩 몇달 내면 당대표도 뽑고, 심지어 국회의장을 뽑는 나라가 없어요. 창피한 거예요. 미국도 지금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거거든요. 과도한 오픈 프라이머리가 트럼프를 불러낸 거니까요.”
- 정당개혁이 다시 필요하다는 뜻이네요. 사실 노무현 정부 때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자고 시작한 당원 배가 운동 같은 정당개혁이 왜곡된 결과로 나타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부터 반대했어요. 그때도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관련 연구를 보면 참여하는 대표성이 상당히 제한돼 있었습니다. 백인, 남성, 중산층 이런 이들이 많았거든요. 일단 정치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어요. 정치개혁 관련해선 민주당이 꾸준히 외쳐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해요. 두 정당 모두 기득권 구조에 만족하고 있는 겁니다.”
- 거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할 방법이 있을까요. 정당보조금 같은 선의의 제도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요.
“기업들이 죽어라 연구·개발하고 소비자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그런 경쟁 시스템이 전제된 것인데 지금 한국 정당은 경쟁이 없어요. 전국 수준에서는 과점, 지역으로 내려가면 독점입니다. 막 요란하게 싸우지만 국고보조금을 올린다든지 할 땐 조용히 합의해서 잘 끝내죠. 적대적 공생관계인 겁니다. 거대 양당은 국가로부터 돈 받아 편하게 당 운영하고 선거운동하고 그럽니다. 경쟁자가 진입하려면 그 벽을 뚫어야 하는데 참 어렵죠. 같은 당 안에서 마음이 안 맞아 쪼개고 나가는 것도 이젠 어려워요. 기득권이 그냥 두 개로 뭉치도록 돼 있는 구조입니다.”
- 현시점에서 제도와 타협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지금은 타협의 관행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안 된다면 강제할 방법은 다당이 되는 겁니다. 저한테 지금 딱 하나를 골라 무슨 제도를 바꾸겠냐고 물으면 다당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지금은 개헌보다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많은 게 바뀔 수 있어요. 다당이 되면 경쟁자가 진입할 수 있는 구도도 생기고, 법안 통과를 위해 타협도 해야 되는 거고, 그러다보면 권력 구조 변화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올 수 있습니다.”
- 양당이 기득권 구조를 바꾸려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정치권 외부에서 강제할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처럼 시민사회가 갈라져 있는 상황에선 어렵습니다. 다 편 가르기에 매몰돼 사회에 어른이 없어졌어요. 뭔가 큰 변동의 계기 같은 게 필요한 상황이에요. 세대적인 변화로 새 세력이 들어가 판을 바꾼다든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좀 막연하긴 합니다. 제가 볼 때 지금 (주류) 세대는 책임 못 집니다. 너무 오래 해서 이 사람들은 절대 못 바꿀 거예요. 조사해보면 20대들이 586세대를 되게 싫어해요. 기득권, 꼰대, 딱 그렇게 보는 것 같더라고요.”
강 교수는 8월이면 정년퇴임한다. 이번 학기가 강단에 서는 마지막이다. 연구자로서 한국 현대정치의 격동과 함께한 지난 25년을 돌아보면 소회가 있을 법도 한데 그는 그저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 시간이 “에버랜드 같은 놀이터”였고, “롤러코스터도 타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즐거웠다고 했다. 그 시기 많은 연구와 저작이 있지만 <5공화국>이 “한국 민주화의 의미를 찾는 작업”으로 한 것이었기에 제일 애착이 간다고 한다. 그의 의문은 ‘왜 1979년에 민주화가 안 되고 5공화국을 거치고 난 1987년에서야 민주화가 됐을까’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정치에 당부할 건 없는지 물었다.
“그런 건 없고요. 정치를 바꾸는 건 결국 국민들 몫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선거에서도 봤지만,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고 해서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게 국민의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런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때로 더 무서운 거죠. 정치인들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군체>가 지난 13일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영화는 개봉 4주 차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장기 흥행 굳히기에 들어갔다.
좀비물인 <군체>가 관객들에게 통할지 예단하기란 어려웠다. 연 감독은 1000만 영화 <부산행>(2016)으로 K-좀비물의 시작을 알렸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2019~2021)가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영화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연 감독은 <반도>(2020)에서 좀비의 창궐로 고립된 한반도를 그리며 아포칼립스물로의 확장을 꾀했으나 누적 관객 수 381만명에 그치며 흥행에 아쉬움을 남겼다.
<군체>는 좀비 감염 사태가 벌어진 폐쇄된 빌딩에서 생명공학과 교수 ‘세정’(전지현)을 비롯한 생존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10년 사이 익숙해진 장르에 <군체>가 차별화를 둔 건 독창적인 설정에 있다. 영화 속 좀비는 사고 능력을 잃어버려 무작정 소리 나는 방향으로 달려드는 여타 좀비들과 다르다. 이들은 인공지능(AI)처럼 집단으로 사고하고 진화한다. 감염시켜야 할 대상에 관한 정보를 ‘업데이트’할 때, 개체는 동시에 머리를 치켜든 채 멈춘다. 설정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새로운 좀비의 모습이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설정은 ‘개별성이 없는 AI’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AI라는 현시대 화두가 투영된 영화를 시차 없이 볼 수 있는 건 작품을 빠르게 진행하는 연 감독의 추진력 덕분이다. 연 감독은 충무로에서 알아주는 다작 감독으로, 지난해에만 극장 영화 <얼굴>과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두 편으로 관객을 만났다. <군체>의 인물 캐릭터의 입체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동시대적이며 독창적인 좀비 콘셉트를 보는 재미가 스토리의 아쉬움을 상쇄했다.
1600만 명을 동원한 올 상반기 히트작 <왕과 사는 남자>가 입소문이 뒤늦게 퍼지며 뒷심을 보였다면, <군체>는 개봉 후 단기간에 관객을 끌어들였다. 100만·200만·300만·400만 관객까지는 올해 개봉작 중 최단 기록을 연달아 경신했다. 500만 관객 달성은 개봉 24일 만으로, <왕과 사는 남자>(18일째)보다 엿새 늦었다.
<군체>가 초반부터 안정적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돼 관련 일정을 소화하는 감독·배우들의 모습이 노출된 직후 국내에서 개봉한 영향도 있다. ‘스타 파워’도 한몫했다. 끊임없는 작품 활동만큼 유튜브 등에서 활발한 홍보 활동 참여로 대중에게 친숙한 연상호 감독,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전지현,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의 호연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배우 구교환 등이 각각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한국 영화가 많지 않은 비수기에 개봉한 이점도 누렸다. 개봉 직후 부처님 오신 날을 낀 주말(지난달 22~25일)에만 180만 여명이, 지난 3일 지방선거 휴일에는 33만 여 명이 작품을 관람했다. 지난달 정부가 지급한 영화 할인 쿠폰도 흥행에 가속도를 붙였다. 지난 3일 한국 영화 <와일드 씽>의 개봉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 개봉일이었던 지난 10일 하루 박스오피스 2위로 내려섰던 것을 제외하면 개봉일부터 16일까지 내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체>의 제공·배급사 쇼박스는 2026년 영화계의 이른 승자가 됐다.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김도영 감독·260만 명)를 시작으로 사극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1689만 명), 공포 영화 <살목지>(이상민 감독·324만 명)에 이어 <군체>(527만 명·손익분기점 300만 명)까지 영화 4편이 연달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조수빈 쇼박스 홍보팀장은 “멜로·사극·콘셉트 있는 공포물 등 극장에서 큰 흥행을 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장르들로 사랑받았다는 것이 고무적”이라며 “이야기가 좋으면 장르 관계없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상반기였다”고 했다.
프리랜서 개발자 조경숙씨(41)는 최근 자신의 업무 영역을 기존 백엔드(뒷단)에서 프론트엔드와 디자인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이전에는 5명이 팀을 이뤄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홀로 수행한다. 인간 팀원 대신 조씨를 돕는 것은 ‘코딩 인공지능(AI) 에이전트’다. AI에게 입력할 프롬프트(명령어)가 업무역량과 직결되는 조씨의 자산이 됐다. 조씨는 “AI 에이전트 덕분에 마감까지 걸리는 시간이 30~4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AI가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 ‘함께 일하는 동료’로 올라서려 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AX(인공지능 전환)을 선언하며 사내에 AI를 이식하는 작업에 나섰다. AI 활용을 장려하는 수준을 넘어 AI와 직원이 함께 일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AI가 이제 업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가 됐다”면서도 “AI 과의존이 업무 능력을 훼손할까 우려된다”고 했다. AI 에이전트와 인간의 업무를 구분해 조율하는 ‘노동의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SK텔레콤은 16일 AI 에이전트에 사번을 부여하고, 사람처럼 관리하는 조직 체계 실험에 나선다고 밝혔다. AI 에이전트를 위한 데이터 접근·보안 권한 규정을 마련해 AI가 사람처럼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기업에서 AI 에이전트를 ‘조직 구성원’으로 규정해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정재헌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경기도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6 뉴 이천포럼’에서 “AI는 업무 보조도구가 아닌 ‘새로운 업무 주체’”라며 “AX의 일상화를 통해 구성원의 시간과 역량이 새로운 도전을 이끄는 성장 동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료 검색이나 번역에 활용하는 업무 보조 도구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 들어 AI가 이미 직장인들의 삶과 일터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한 증권사 팀장급 인사는 “업계나 회사 차원에서 AI를 워낙 권장하기 때문에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AI를 써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존 업무 자동화 소프트웨어와 AI 에이전트의 차이점은 ‘자율적 판단’이다. 자동화 소프트웨어가 사람이 미리 설계한 절차를 빠르게 반복하는 작업에 그쳤다면, AI 에이전트는 목표가 설정되면 이에 이르는 작업 과정을 직접 수립한 뒤 작업 도구를 골라 실행한다. 결제 관리나 데이터 입력과 같은 정형 업무를 넘어 맥락 해석과 논리적 추론 같은 비정형 업무까지 맡아 할 수 있다.
출판 마케터 고광일씨(40)는 “신간 도서를 위한 이벤트 기획, 홍보 콘텐츠 제작, 업무 e메일 작성까지 모두 제미나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하는 팀장급 인사는 “회사 내부 AI 모델은 물론 여러 외부 생성형 AI를 활용해 업무에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보안이 요구되는 업무는 내부 모델을 사용하되, 그렇지 않은 업무는 여러 AI가 제시하는 결과물을 바탕으로 비교 검증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AI 에이전트에 업무 초안을 맡기고 사람은 이를 조율·감독하는 위치로 옮겨간 셈이다.
다만 AI가 일터로 파고들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불안감도 감지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전날 발표한 ‘업무동향지표 2026’을 보면 한국에서 ‘AI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직장인은 78%에 달했다. 글로벌 응답자 평균(65%)보다 13%포인트 높은 수치다. 경영진의 AI 방향성이 명확하다고 답한 비율은 16%로 역시 글로벌 평균(26%)보다 크게 낮았다. AI 학습 필요성을 느끼지만 이에 대한 회사 차원의 인프라나 지원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국내 대기업도 최근 속속 전사적 AX를 선언하고 나섰다. 삼성도 이달부터 모든 관계사 업무에 외부 생성형 AI를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부터 제조·마케팅·지원 등 8대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접목하고, 사장단을 주축으로 ‘AI 대전환’을 시도하겠다는 포부도 내세웠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사내 강연을 계획했으나, 올트만 CEO의 개인 일정으로 미뤄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조직 DNA를 AI 중심으로 재편해 AI 기반 업무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로서는 1990년대 ‘디지털 전환’, 2000년대 ‘모바일 전환’에 이어 AI 전환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AI를 업무에 잘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는 물론 기업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절박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13일 이천포럼 마무리 발언에서 “나의 AI에서 우리의 AI로 진화해야 한다”며 ‘1인 1에이전트’ 도입을 제시했다.
현대차도 지난 1월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공개한 뒤 ‘인간 중심의 AI 로보틱스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내세웠다. 현대차는 사전 훈련 등을 거쳐 아틀라스를 2028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게 할 계획이다.
다만 ‘일의 근육’을 키울 숙련의 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사람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우는 과정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사고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AI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건설사 홍보팀 직원 이모씨(36)는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 제미나이를 쓸 수 없게 되자 이전에 혼자서 해내던 일도 버벅대고 스스로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하는 심모씨(27)는 “문학 편집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인데 한 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 것 같아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에이전트에 어떤 권한을 부여하고 어떤 업무를 맡길지 정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국내 한 대기업 소속 임원 B씨는 “중요한 건 AI 모델 사용 권한 자체가 아니라 AI를 어디에 활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며 “‘알아서 잘 활용해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전사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BM이 지난 8일 발표한 주요 기술담당 임원 대상 설문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는 ‘AI 도입 속도가 기업의 거버넌스 역량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다’고 답했다. AI 에이전트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행동해 인간이 바로 잡아야 했던 ‘사고’도 지난해 기업당 평균 54건 발생했다. 고객 정보나 보안 등 민감한 업무를 다룰수록 사고의 위험성도 더 커질 수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업무의 구조 자체를 바꿀 것”이라며 “기존에 해왔던 작업들은 AI에게 점차 옮겨가고, 인간은 이전에 하지 못했던 과업을 새롭게 찾아 나서는 흐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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