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촉법소년변호사 “그 시대엔 다 그랬다?”…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이 소환한 ‘의사’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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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8-16 13:09본문
의정부촉법소년변호사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단순한 연예계 집안 논란을 넘어 역사 인식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성격의 단체에서 활동한 기록과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행적이 잇따라 확인된 가운데, 한 역사학자는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단체 가입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논란은 지난 7일 하영이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서양의학을 진료한 의사였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제강점기 행적이 재조명됐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귀국 후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했고 고종을 진료한 이력도 있다. 의학사 측면에서는 근대 의료의 선구자로 평가받을 만한 경력이지만, 일제강점기 후반의 행적을 놓고는 다른 평가가 나온다.
우선 안상호는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정친목회는 당시 조선인 상류층과 실업인들이 참여한 단체로, 이완용 등이 관여했으며 조선총독부의 ‘내선융화’ 정책과 맞닿아 있던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된다. 하영 측 소속사 역시 처음에는 안상호의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관련 자료를 확인한 뒤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안상호의 가족사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선전에도 활용됐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의 가정을 ‘일선동체’의 모범적인 사례처럼 소개한 기사가 실렸다. 최근 공개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정이라는 취지로 안상호 가족을 치켜세웠다.
안양에 남아 있는 송덕비도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인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안상호 전의 송덕비’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친일 시설’로 분류돼 있다. 해당 송덕비는 안상호가 사망할 무렵인 192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도 소개됐다.
하지만 안상호는 현재 정부가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아니다.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논란에 제동을 걸었다. 심 소장은 안상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 인사들이 많이 참여한 단체에 소속됐으며 일본의 식민 통치 홍보에 가족이 활용된 점을 들어 “만년에 존경받을 인물은 아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심 소장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종 독살설과 친일 행적을 연결하는 것 역시 경계했다.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분위기에 영향을 준 당대의 의혹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도 안상호가 대한제국이 양성한 의학 인재였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의료 활동이나 이완용 치료를 곧바로 친일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 상당수가 식민지 체제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안상호 역시 개인의 친일 의지라기보다 당시 사회의 ‘구조적 친일’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정말 당시의 조선인 엘리트라면 식민지 현실에서 일본에 협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까. 적어도 의사라는 같은 직업군을 놓고 보면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필순(1878~1919)이다.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가운데 한 명인 김필순은 세브란스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주치의로 활동했다. 병원 수입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국가유산·역사 자료에서도 그는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주치의로 활동하며 독립군을 치료하고 병원 수입을 군자금으로 기부한 의사·독립운동가’로 소개됐다.
세브란스의학교 출신 이태준(1883~1921)도 비슷하다. 그는 몽골에서 근대 의술을 펼쳐 현지인들을 치료했고 몽골 국왕의 어의로까지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몽골 국왕은 1919년 이태준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박서양(1885~1940) 역시 제중원의학교를 졸업한 의사로 의료 활동과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그는 신분제의 벽을 넘어 의사가 된 뒤 만주로 건너가 병원을 세우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2008년 건국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 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진입한 지식인이었다. 일본과 서구의 근대 의학을 접했고, 당시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자산을 가진 엘리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길은 달랐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재산을 이용해 식민지 체제에 편입됐고, 다른 이들은 안정된 삶과 경력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 시대 엘리트라면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친일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모든 행적을 설명하기 어렵다.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가 개인의 선택을 강하게 제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협력과 저항, 침묵과 망명,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서로 다른 선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씨 실종사건’ 당시 수색을 도왔던 대학 동기를 용의자로 지목해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스토킹한 혐의로 윤희씨의 아버지 이모씨(90)가 재판에 넘겨졌다.
1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전주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이경석)는 지난 5일 이씨와 유튜브 채널 운영자 박모씨(54)를 명예훼손·스토킹처벌법 위반·협박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24년 11월부터 윤희씨의 지인 A씨(45)를 실종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해 유튜브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 등을 받는다.
전북대 수의학과 학생이던 윤희씨는 2006년 6월5일 오후 학과 사람들과 전북대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종강 모임을 가졌다. 윤희씨는 이튿날 새벽 모임이 파한 뒤 기거하던 원룸으로 귀가해 컴퓨터로 ‘112’ ‘성추행’ 등을 검색했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틀 후 윤희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친구들이 원룸을 찾아갔고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껏 가족들은 윤희씨의 생사를 모른다. A씨는 이씨에게 실종 사실을 알리고 수색을 도운 인물이다.
이씨와 박씨는 2024년부터 A씨를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그해 11~12월 ‘A씨가 윤희씨의 자취방에 침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속옷을 훔쳤다’는 취지의 영상을 유튜브에 3차례 게시했다. 또 해당 내용을 A씨의 가족과 직장에 알리겠다는 취지의 영상을 게시해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A씨의 직장까지 찾아가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A씨의 직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거나 유튜브에 A씨의 실명을 공개하는 등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스토킹한 혐의도 있다.
피의자들은 윤희씨의 컴퓨터에 A씨의 메신저 로그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증거를 인멸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뒤 보완수사를 거쳐 검찰시민위원회(시민위)에 사건을 회부했다. 피의자들이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수익 창출과 관심 유도 목적이 있어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한 검찰은 시민위 의견 등을 고려해 정식 재판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들을 기소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장기간 이어진 명예훼손과 스토킹 등으로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엄벌을 탄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앞서 윤희씨의 남자친구였던 B씨를 실종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해 허위사실이 담긴 현수막을 설치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측이 보수 개신교계 네트워크를 통해 백악관과 소통한 뒤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양측의 면담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 목사는 면담 내용을 두고 “어떤 내용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보수 개신교의 미 정치권 접촉이 한·미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취재를 종합하면 손 목사와 가족들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다. 세계로교회 측이 공개한 면담 사진을 보면 이번 면담에는 폴라 화이트 백악관 신앙사무국 수석고문, 랍 맥코이 목사가 배석했다. 손 목사는 지난 7일 올린 유튜브 영상에서 “여러 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여러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 등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면담은 화이트 수석고문이나 맥코이 목사 등 개신교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손 목사의 트럼프 면담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맥코이 목사는 지난해 9월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정교분리는 교회를 국가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이지 교회의 양심을 침묵시키라는 명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맥코이 목사는 미 보수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 USA의 신앙 부서 의장이다.
손 목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내용을 묻는 기자 질의에 “저야 더 말하고 싶지 않겠느냐”며 “그러나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이나 관계자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며 그쪽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손 목사 측은 올 초부터 미 국무부 인사를 차례로 만나며 한국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해왔다. 손 목사는 올해 6월 라일리 반즈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 차관보와 로메로 백악관 신앙사무국 연락관을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면담하고 지난 2월에는 미 대사관저에서 마이클 니덤 미 국무부 고문 등도 만났다.
손 목사는 보수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대표다. 세이브코리아는 지난해 전국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연 단체다. 손 목사는 지난해 대선과 부산교육감 재선거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손 목사는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미국 정치권 인사와 접촉하는 보수 개신교 인사들의 발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손 목사의 형사처벌이 종교의 자유가 아닌 공직선거법이 쟁점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특히 정부는 보수 개신교 인사들이 미국 측 인사들과 만나 현 정부가 친중 세력이라는 식의 주장을 제기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들이 제기하는 종교의 자유 이슈가 한·미 안보 현안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발간하는 국제 종교의 자유 보고서에 한국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이 담길지도 관심사다. 미 국무부는 매해 200여국의 종교 자유 실태와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해 미 의회에 제출한다. 지난해에는 2024년 종교 자유의 현황을 다룬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았다. 올 하반기 중 2024~2025년을 종합한 국제 종교의 자유 보고서가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지난 7일 하영이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서양의학을 진료한 의사였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제강점기 행적이 재조명됐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귀국 후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했고 고종을 진료한 이력도 있다. 의학사 측면에서는 근대 의료의 선구자로 평가받을 만한 경력이지만, 일제강점기 후반의 행적을 놓고는 다른 평가가 나온다.
우선 안상호는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정친목회는 당시 조선인 상류층과 실업인들이 참여한 단체로, 이완용 등이 관여했으며 조선총독부의 ‘내선융화’ 정책과 맞닿아 있던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된다. 하영 측 소속사 역시 처음에는 안상호의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관련 자료를 확인한 뒤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안상호의 가족사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선전에도 활용됐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의 가정을 ‘일선동체’의 모범적인 사례처럼 소개한 기사가 실렸다. 최근 공개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정이라는 취지로 안상호 가족을 치켜세웠다.
안양에 남아 있는 송덕비도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인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안상호 전의 송덕비’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친일 시설’로 분류돼 있다. 해당 송덕비는 안상호가 사망할 무렵인 192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도 소개됐다.
하지만 안상호는 현재 정부가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아니다.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논란에 제동을 걸었다. 심 소장은 안상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 인사들이 많이 참여한 단체에 소속됐으며 일본의 식민 통치 홍보에 가족이 활용된 점을 들어 “만년에 존경받을 인물은 아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심 소장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종 독살설과 친일 행적을 연결하는 것 역시 경계했다.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분위기에 영향을 준 당대의 의혹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도 안상호가 대한제국이 양성한 의학 인재였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의료 활동이나 이완용 치료를 곧바로 친일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 상당수가 식민지 체제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안상호 역시 개인의 친일 의지라기보다 당시 사회의 ‘구조적 친일’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정말 당시의 조선인 엘리트라면 식민지 현실에서 일본에 협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까. 적어도 의사라는 같은 직업군을 놓고 보면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필순(1878~1919)이다.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가운데 한 명인 김필순은 세브란스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주치의로 활동했다. 병원 수입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국가유산·역사 자료에서도 그는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주치의로 활동하며 독립군을 치료하고 병원 수입을 군자금으로 기부한 의사·독립운동가’로 소개됐다.
세브란스의학교 출신 이태준(1883~1921)도 비슷하다. 그는 몽골에서 근대 의술을 펼쳐 현지인들을 치료했고 몽골 국왕의 어의로까지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몽골 국왕은 1919년 이태준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박서양(1885~1940) 역시 제중원의학교를 졸업한 의사로 의료 활동과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그는 신분제의 벽을 넘어 의사가 된 뒤 만주로 건너가 병원을 세우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2008년 건국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 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진입한 지식인이었다. 일본과 서구의 근대 의학을 접했고, 당시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자산을 가진 엘리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길은 달랐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재산을 이용해 식민지 체제에 편입됐고, 다른 이들은 안정된 삶과 경력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 시대 엘리트라면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친일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모든 행적을 설명하기 어렵다.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가 개인의 선택을 강하게 제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협력과 저항, 침묵과 망명,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서로 다른 선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씨 실종사건’ 당시 수색을 도왔던 대학 동기를 용의자로 지목해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스토킹한 혐의로 윤희씨의 아버지 이모씨(90)가 재판에 넘겨졌다.
1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전주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이경석)는 지난 5일 이씨와 유튜브 채널 운영자 박모씨(54)를 명예훼손·스토킹처벌법 위반·협박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24년 11월부터 윤희씨의 지인 A씨(45)를 실종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해 유튜브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 등을 받는다.
전북대 수의학과 학생이던 윤희씨는 2006년 6월5일 오후 학과 사람들과 전북대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종강 모임을 가졌다. 윤희씨는 이튿날 새벽 모임이 파한 뒤 기거하던 원룸으로 귀가해 컴퓨터로 ‘112’ ‘성추행’ 등을 검색했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틀 후 윤희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친구들이 원룸을 찾아갔고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껏 가족들은 윤희씨의 생사를 모른다. A씨는 이씨에게 실종 사실을 알리고 수색을 도운 인물이다.
이씨와 박씨는 2024년부터 A씨를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그해 11~12월 ‘A씨가 윤희씨의 자취방에 침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속옷을 훔쳤다’는 취지의 영상을 유튜브에 3차례 게시했다. 또 해당 내용을 A씨의 가족과 직장에 알리겠다는 취지의 영상을 게시해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A씨의 직장까지 찾아가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A씨의 직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거나 유튜브에 A씨의 실명을 공개하는 등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스토킹한 혐의도 있다.
피의자들은 윤희씨의 컴퓨터에 A씨의 메신저 로그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증거를 인멸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뒤 보완수사를 거쳐 검찰시민위원회(시민위)에 사건을 회부했다. 피의자들이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수익 창출과 관심 유도 목적이 있어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한 검찰은 시민위 의견 등을 고려해 정식 재판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들을 기소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장기간 이어진 명예훼손과 스토킹 등으로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엄벌을 탄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앞서 윤희씨의 남자친구였던 B씨를 실종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해 허위사실이 담긴 현수막을 설치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측이 보수 개신교계 네트워크를 통해 백악관과 소통한 뒤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양측의 면담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 목사는 면담 내용을 두고 “어떤 내용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보수 개신교의 미 정치권 접촉이 한·미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취재를 종합하면 손 목사와 가족들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다. 세계로교회 측이 공개한 면담 사진을 보면 이번 면담에는 폴라 화이트 백악관 신앙사무국 수석고문, 랍 맥코이 목사가 배석했다. 손 목사는 지난 7일 올린 유튜브 영상에서 “여러 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여러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 등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면담은 화이트 수석고문이나 맥코이 목사 등 개신교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손 목사의 트럼프 면담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맥코이 목사는 지난해 9월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정교분리는 교회를 국가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이지 교회의 양심을 침묵시키라는 명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맥코이 목사는 미 보수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 USA의 신앙 부서 의장이다.
손 목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내용을 묻는 기자 질의에 “저야 더 말하고 싶지 않겠느냐”며 “그러나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이나 관계자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며 그쪽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손 목사 측은 올 초부터 미 국무부 인사를 차례로 만나며 한국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해왔다. 손 목사는 올해 6월 라일리 반즈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 차관보와 로메로 백악관 신앙사무국 연락관을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면담하고 지난 2월에는 미 대사관저에서 마이클 니덤 미 국무부 고문 등도 만났다.
손 목사는 보수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대표다. 세이브코리아는 지난해 전국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연 단체다. 손 목사는 지난해 대선과 부산교육감 재선거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손 목사는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미국 정치권 인사와 접촉하는 보수 개신교 인사들의 발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손 목사의 형사처벌이 종교의 자유가 아닌 공직선거법이 쟁점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특히 정부는 보수 개신교 인사들이 미국 측 인사들과 만나 현 정부가 친중 세력이라는 식의 주장을 제기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들이 제기하는 종교의 자유 이슈가 한·미 안보 현안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발간하는 국제 종교의 자유 보고서에 한국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이 담길지도 관심사다. 미 국무부는 매해 200여국의 종교 자유 실태와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해 미 의회에 제출한다. 지난해에는 2024년 종교 자유의 현황을 다룬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았다. 올 하반기 중 2024~2025년을 종합한 국제 종교의 자유 보고서가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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