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흥신소 [김경식의 이세계 ESG]저탄소 철강, 모두 원하지만 누구도 비용은 얘기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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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7-31 06:34본문
인천흥신소 매년 6월 미국 뉴욕에서는 철강 싱크탱크 월드스틸다이내믹스가 주관하는 ‘글로벌 스틸 다이내믹스 포럼’이 열린다. 세계 주요 철강회사와 원료·에너지·자동차 등 수요산업의 경영자들이 모여 철강산업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철강 재조정의 시대’였다. 공급 과잉과 보호무역, 에너지 부족, 탈탄소 비용, 인공지능(AI)이 한꺼번에 산업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앞으로의 승자는 생산능력이 가장 큰 회사가 아니라 원료·에너지·물류·수요처를 연결하고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제때 공급하는 회사라는 것이 포럼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변화를 다룬 포럼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의 혁신이 아니었다. 모두가 저탄소 철강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현실이었다.
철강은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7~8%를 차지한다. 고로에서 철광석을 환원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석탄과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려면 고철 사용을 늘리고, 고로에 수소계 환원가스를 투입하고, 직접환원철(DRI) 설비와 전기로를 확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전기로 만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로 가야 한다. 문제는 어느 길도 저렴하지 않다는 것이다. 값싼 석탄을 수소와 무탄소 전력으로 대체하면 원료비용과 전력비용, 신규 설비투자가 동시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도기업이 손해 보게 되는 시장
이번 포럼에서 미국 철강사 누코는 저탄소 철강 브랜드 ‘에코닉’을 자동차업계에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판매량과 프리미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독일 SHS 경영자도 저탄소 철강이 고객의 선호를 얻을 수는 있어도 추가 가격까지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철강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공급망 탄소감축을 선언하면서도 저탄소 강판을 구매하는 데는 주저한다. 조선사는 친환경 선박을 홍보하지만 해외 선주는 저탄소 후판의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는다. 건설사는 ESG를 말하면서도 원자재 입찰에서는 여전히 가격을 먼저 본다. 정부 역시 철강업계엔 탄소를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공공 조달에서는 값싼 철강을 찾는다. 저탄소 전환을 외치는 모든 주체가 실제 비용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고 있다.
철강은 품질과 규격이 통일되어 국제거래가 활발하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상품이다. 한 회사가 먼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탄소 설비로 전환해도 경쟁국 철강사가 값싼 고탄소 제품을 계속 공급하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선도기업이 보상받기는커녕 손해를 보는 구조다. 결국 철강사는 수요기업의 저탄소 철강 발주만 기다리고, 수요기업은 소비자가 먼저 값을 치르기만 기다린다. 정부는 미적미적하면서 기업의 ‘자발적 전환’만 기다린다. 누구도 손해를 볼 생각이 없으니 말만 무성하고 시장의 힘은 작동하지 않는다.
저탄소 철강의 프리미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설비 전환을 기업의 선의만으로 추진하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철강사 손실을 모두 보전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철강사도 공정 혁신과 원가 절감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존 설비의 비효율까지 탈탄소 비용으로 포장해 사회에 넘겨서는 안 된다.
보조금 잔치를 열자는 게 아니다. 먼저 시장의 규칙이 정립돼야 한다. 무엇을 저탄소 철강으로 인정할지 기준부터 통일하고, 실제 배출 감소와 매스밸런스 방식의 감축 실적 배분을 구분하고,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첫 구매자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제정돼 올해 6월 시행된 K스틸법은 저탄소 철강의 인증과 수요 창출을 지원할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 도로·철도·항만과 공공 건축물부터 인증된 저탄소 철강의 사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야 한다. 철강사에 감축을 요구하면서 정부 조달은 최저가만 고집하는 이중성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 스스로 첫 구매자가 돼야
일본은 2025년부터 자동차회사의 저탄소 강재 도입 계획과 실적을 평가해 전기차 보조금을 최대 5만엔 추가하고 있다. 정부가 철강사에 직접 돈을 주는 대신 자동차회사가 저탄소 철강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우리도 철강사와 자동차 제조사가 다년간 최소 구매 물량을 약정하고, 정부가 정책금융과 보증으로 초기 위험을 낮추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건설은 공공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우선 기반 수요를 늘려야 한다. 조선은 수주산업인 만큼 철강사·조선사·선주가 프로젝트별로 프리미엄을 나누고, 공공부문에선 저탄소 강재를 쓴 선박에 수출금융과 보증 혜택을 주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배출권거래제 역시 새로운 설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예측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41개의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고 있고 일본·인도·베트남도 올해 국가 단위 제도를 출범시켰다. 국내 탄소가격이 지나치게 낮거나 변동성이 크면 수소환원제철 같은 장기투자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배출권 가격 신호를 제공해 투자 불확실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원책은 실제 감축량과 투자 성과에 연동해야 한다. 기업이 초기 생산량을 확보해 기술 축적과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낮추는 데 정책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
모든 철강사가 탈탄소를 말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문제는 누가 비용을 내고 어떻게 리스크가 배분되는지다. 정부가 초기 시장을 만들고 철강사는 공정 혁신으로 원가를 낮춰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증 기준과 예측 가능한 탄소가격도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기술만 개발한다고 없던 저탄소 철강시장이 생겨날 리는 만무하다. 구매자가 값을 치를 때 비로소 시장이 성립할 터이다. 모두 만들겠다고 말하고 원한다고 말하면서 누구도 돈을 낼 생각이 없는 현 구조에선 K철강의 탈탄소도, 세계시장 선점도 헛된 구호일 뿐이다.
매주 금요일을 기다린다. 적시하면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면 자연발생적인 과정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억지로 반복하다 보면 형성되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으면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금요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불금이어서는 아니다. 나에게 금요일은 스포티파이에 ‘뉴 뮤직 프라이데이 코리아’와 ‘신곡 레이더’가 업데이트되는 날이다. 둘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지향을 갖는다. 전자는 스포티파이 에디터들이 고른 신곡 플레이리스트이고, 후자는 청취 패턴을 기반으로 제공하는 맞춤형 개인 플레이리스트다.
어쩌면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과거 글에서 알고리듬 추천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제외하면, 내 주변 지인은 대부분 음악 관계자다. 그들의 소셜미디어만 추적해도 내가 들어야 할 곡은 이미 충분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 듣는 새로운 뮤지션·밴드 역시 나의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 중 하나다.
변한 이유는 기실 별것 없다. 어떤 곡을 제시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있다. 나는 알고리듬 추천을 쓰지 않는 이유를 ‘취향의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라고 적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혹시 내가 내 주변이라는 또 다른 취향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알고리듬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내 취향의 성역이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도리어 취향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의 쾌감과 희열을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 타인의 취향에 기꺼이 영향받아 자신의 취향을 리모델링하려는 취향인 셈이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악을 듣고, 음악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으며, 이론에도 해박하고, 악기까지 전문가급으로 다룰 줄 아는 평론가가 있다고 치자. 드래건 같은 평론가가 실재한다 하더라도 그의 평가에 금빛 월계관을 씌울 순 없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 견해일 뿐이다. 즉 예술 감상은 공동체보다 개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단적 감정보다 개별적 지성에 뿌리내린 행위다. 요컨대 다원성의 인정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는 취향의 영역에서도 다름을 못 참는 존재가 됐다. ‘개취’ ‘취존’을 부르짖는 건 오로지 ‘나의 취향’에 국한할 뿐 타인의 취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분법으로 나눠 평론가를 “비대중적인 작품만 평가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장담할 수 있다. 그 평론가가 별점 4개 이상 부여한 대형 히트작이 100%의 확률로 여럿 널려있을 것이다. 취향은 맥락이며, 이 맥락은 관계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복잡하다. 이 세상이 적과 아군으로만 구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호프>를 둘러싼 공기가 뜨겁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그것이 인간이든 사회든 생생하게 살아있기 위해서라도 반론은 필수다. 서로 다른 평가의 난반사야말로 풍요롭고 건전한 사회라는 증거일 테니까. 단, 조건이 있다.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야말로 품위 없음의 증거라면, 품위 있는 사람 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저 상상력만 발휘하면 된다. 상상력 역시 마음의 한 형태이므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변화를 다룬 포럼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의 혁신이 아니었다. 모두가 저탄소 철강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현실이었다.
철강은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7~8%를 차지한다. 고로에서 철광석을 환원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석탄과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려면 고철 사용을 늘리고, 고로에 수소계 환원가스를 투입하고, 직접환원철(DRI) 설비와 전기로를 확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전기로 만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로 가야 한다. 문제는 어느 길도 저렴하지 않다는 것이다. 값싼 석탄을 수소와 무탄소 전력으로 대체하면 원료비용과 전력비용, 신규 설비투자가 동시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도기업이 손해 보게 되는 시장
이번 포럼에서 미국 철강사 누코는 저탄소 철강 브랜드 ‘에코닉’을 자동차업계에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판매량과 프리미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독일 SHS 경영자도 저탄소 철강이 고객의 선호를 얻을 수는 있어도 추가 가격까지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철강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공급망 탄소감축을 선언하면서도 저탄소 강판을 구매하는 데는 주저한다. 조선사는 친환경 선박을 홍보하지만 해외 선주는 저탄소 후판의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는다. 건설사는 ESG를 말하면서도 원자재 입찰에서는 여전히 가격을 먼저 본다. 정부 역시 철강업계엔 탄소를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공공 조달에서는 값싼 철강을 찾는다. 저탄소 전환을 외치는 모든 주체가 실제 비용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고 있다.
철강은 품질과 규격이 통일되어 국제거래가 활발하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상품이다. 한 회사가 먼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탄소 설비로 전환해도 경쟁국 철강사가 값싼 고탄소 제품을 계속 공급하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선도기업이 보상받기는커녕 손해를 보는 구조다. 결국 철강사는 수요기업의 저탄소 철강 발주만 기다리고, 수요기업은 소비자가 먼저 값을 치르기만 기다린다. 정부는 미적미적하면서 기업의 ‘자발적 전환’만 기다린다. 누구도 손해를 볼 생각이 없으니 말만 무성하고 시장의 힘은 작동하지 않는다.
저탄소 철강의 프리미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설비 전환을 기업의 선의만으로 추진하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철강사 손실을 모두 보전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철강사도 공정 혁신과 원가 절감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존 설비의 비효율까지 탈탄소 비용으로 포장해 사회에 넘겨서는 안 된다.
보조금 잔치를 열자는 게 아니다. 먼저 시장의 규칙이 정립돼야 한다. 무엇을 저탄소 철강으로 인정할지 기준부터 통일하고, 실제 배출 감소와 매스밸런스 방식의 감축 실적 배분을 구분하고,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첫 구매자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제정돼 올해 6월 시행된 K스틸법은 저탄소 철강의 인증과 수요 창출을 지원할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 도로·철도·항만과 공공 건축물부터 인증된 저탄소 철강의 사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야 한다. 철강사에 감축을 요구하면서 정부 조달은 최저가만 고집하는 이중성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 스스로 첫 구매자가 돼야
일본은 2025년부터 자동차회사의 저탄소 강재 도입 계획과 실적을 평가해 전기차 보조금을 최대 5만엔 추가하고 있다. 정부가 철강사에 직접 돈을 주는 대신 자동차회사가 저탄소 철강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우리도 철강사와 자동차 제조사가 다년간 최소 구매 물량을 약정하고, 정부가 정책금융과 보증으로 초기 위험을 낮추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건설은 공공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우선 기반 수요를 늘려야 한다. 조선은 수주산업인 만큼 철강사·조선사·선주가 프로젝트별로 프리미엄을 나누고, 공공부문에선 저탄소 강재를 쓴 선박에 수출금융과 보증 혜택을 주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배출권거래제 역시 새로운 설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예측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41개의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고 있고 일본·인도·베트남도 올해 국가 단위 제도를 출범시켰다. 국내 탄소가격이 지나치게 낮거나 변동성이 크면 수소환원제철 같은 장기투자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배출권 가격 신호를 제공해 투자 불확실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원책은 실제 감축량과 투자 성과에 연동해야 한다. 기업이 초기 생산량을 확보해 기술 축적과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낮추는 데 정책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
모든 철강사가 탈탄소를 말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문제는 누가 비용을 내고 어떻게 리스크가 배분되는지다. 정부가 초기 시장을 만들고 철강사는 공정 혁신으로 원가를 낮춰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증 기준과 예측 가능한 탄소가격도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기술만 개발한다고 없던 저탄소 철강시장이 생겨날 리는 만무하다. 구매자가 값을 치를 때 비로소 시장이 성립할 터이다. 모두 만들겠다고 말하고 원한다고 말하면서 누구도 돈을 낼 생각이 없는 현 구조에선 K철강의 탈탄소도, 세계시장 선점도 헛된 구호일 뿐이다.
매주 금요일을 기다린다. 적시하면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면 자연발생적인 과정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억지로 반복하다 보면 형성되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으면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금요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불금이어서는 아니다. 나에게 금요일은 스포티파이에 ‘뉴 뮤직 프라이데이 코리아’와 ‘신곡 레이더’가 업데이트되는 날이다. 둘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지향을 갖는다. 전자는 스포티파이 에디터들이 고른 신곡 플레이리스트이고, 후자는 청취 패턴을 기반으로 제공하는 맞춤형 개인 플레이리스트다.
어쩌면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과거 글에서 알고리듬 추천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제외하면, 내 주변 지인은 대부분 음악 관계자다. 그들의 소셜미디어만 추적해도 내가 들어야 할 곡은 이미 충분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 듣는 새로운 뮤지션·밴드 역시 나의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 중 하나다.
변한 이유는 기실 별것 없다. 어떤 곡을 제시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있다. 나는 알고리듬 추천을 쓰지 않는 이유를 ‘취향의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라고 적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혹시 내가 내 주변이라는 또 다른 취향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알고리듬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내 취향의 성역이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도리어 취향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의 쾌감과 희열을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 타인의 취향에 기꺼이 영향받아 자신의 취향을 리모델링하려는 취향인 셈이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악을 듣고, 음악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으며, 이론에도 해박하고, 악기까지 전문가급으로 다룰 줄 아는 평론가가 있다고 치자. 드래건 같은 평론가가 실재한다 하더라도 그의 평가에 금빛 월계관을 씌울 순 없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 견해일 뿐이다. 즉 예술 감상은 공동체보다 개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단적 감정보다 개별적 지성에 뿌리내린 행위다. 요컨대 다원성의 인정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는 취향의 영역에서도 다름을 못 참는 존재가 됐다. ‘개취’ ‘취존’을 부르짖는 건 오로지 ‘나의 취향’에 국한할 뿐 타인의 취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분법으로 나눠 평론가를 “비대중적인 작품만 평가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장담할 수 있다. 그 평론가가 별점 4개 이상 부여한 대형 히트작이 100%의 확률로 여럿 널려있을 것이다. 취향은 맥락이며, 이 맥락은 관계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복잡하다. 이 세상이 적과 아군으로만 구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호프>를 둘러싼 공기가 뜨겁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그것이 인간이든 사회든 생생하게 살아있기 위해서라도 반론은 필수다. 서로 다른 평가의 난반사야말로 풍요롭고 건전한 사회라는 증거일 테니까. 단, 조건이 있다.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야말로 품위 없음의 증거라면, 품위 있는 사람 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저 상상력만 발휘하면 된다. 상상력 역시 마음의 한 형태이므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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