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전환적 사회정책’이 나와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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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7-31 21:58본문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대규모 산업 전환 계획을 내놓았다. 이제는 그 규모와 강도에 걸맞은 전환적 사회정책이 나와야 할 때다.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걸었으니 불평등과 분배 문제도 신경 써서 균형을 맞추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산업 전환에 들어가게 될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빠르게 효과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산업사회를 만들어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 전환뿐만 아니라 사회적 전환이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전자 또한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충격이 처음 나타났던 19세기 이후로 기술의 발전은 스스로 벌어지는 독자적인 힘이며, 사회는 그저 거기에 따라 해체되고 재구성될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는 종속변수일 뿐 기술이야말로 독립변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은 실제로 벌어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업과 사회의 전환 과정을 절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산업사회란 SF만화에 나오는 사이보그처럼 기계와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한 몸으로 작동하는 존재다. 이는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에 의해 결정적으로 가로막히거나 추동되는 상호적 과정으로 돌아간다.
내키지 않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전쟁사를 돌아보자. 유럽에서 총포의 도입은 14세기 말에 이루어졌지만 전력에 있어서 큰 효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전쟁 방식과 군대의 조직 방식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일부의 병사가 화승총을 쓴다고 해봐야 그 효과가 석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유의미한 전력의 혁신은 1534년 카를 5세가 창병과 검병과 총병을 정교하게 결합한 테르시오 전법을 제도화하면서 나타났다. 하지만 총기의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나 군대 조직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20세기의 2차대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차대전 초입만 해도 칼을 쓰는 백병전이 전쟁의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기술 전환의 심도와 중요성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선례로 자주 언급되는 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도와 기차는 1830년대부터 운송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 있어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반세기가 지난 1870년대를 전후한 시점이다.
철도 산업이 그 막대한 생산적 잠재력을 풀어내어 거기에 들어간 막대한 투자에 대해 안정적인 수익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표준화되어야 하며 나아가 사회 전체까지 기차 시간표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시계처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 반경 몇십 ㎞ 바깥을 나갈 일이 없고 육상의 운송수단이라고 해봐야 역마차 정도였던 상태에서 몇천년을 살아온 문명사회가 여기에 금방 적응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물류 유통의 획기적인 변화, 기업 금융과 자본 시장과 노사 관계를 아우르는 경제제도 전체의 변화가 벌어져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철도의 투자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기술 전환 맞춰 사회적 전환 필요
가까운 예로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산성으로 이어졌던 과정을 돌아보자. 컴퓨터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보급되었지만 이는 기존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컴퓨터를 타자기 대용으로, 계산기 대용으로 기껏해야 회계 장부와 문서 정리에 사용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디지털 혁명에 걸맞은 방식으로 기업 전체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리엔지니어링’이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오면 기업 조직의 형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조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기술 전환에 조응하는 사회 및 조직 전환을 위하여 던지고 풀어야 할 핵심적인 질문들의 목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조직에서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둘째, 성원들의 역할과 직무는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셋째, 지식이 공유되는 방식은 어떠한가. 넷째, 개인과 집단 간의 신뢰와 표준은 어떻게 조성하고 설정할 것인가. 이를 기업 조직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차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고스란히 사회대개혁의 과제로 이어진다. 첫째, 국가와 시장, 자본과 노동, 상이한 여러 산업 부문 등의 사이에서 자원 배분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여기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기능을 어떻게 쇄신하고 확장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둘째,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생각해볼 때 사라지는 혹은 사라져야 할 임무와 새로이 생겨날 혹은 생겨나야 할 임무를 어떻게 정리하고 생성할 것인가. 이는 노동시장의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러 역할과 임무를 찾아낼 장치들의 준비를 뜻한다. 셋째, 지식의 성격은 무엇이고 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함께 활용하는 과정을 어떠한 체계로 확립할 것인가. 이는 교육제도의 정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형성과 접근에 대한 무수한 문제, 나아가 사회 전체의 지식 동원과 활용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과제로 던진다. 넷째, 모든 성원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면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에 적극적 자발적으로 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전환 비용의 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소득의 재분배와 혁신적 사회 정책을 마련하여 사회적 신뢰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제를 던진다.
다원적 견제 유지 속 전환 이뤄야
이러한 사회대개혁의 노력을 ‘전환적 사회 정책’으로 부르자. 이는 규모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평상시의 사회 정책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야심적인 발상을 요구하며 또 그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의 자원 동원을 요구한다. 1930년대의 경험이 그러했다. 중화학 공업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사회를 형성하는 과제에 있어서 19세기에 생겨난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형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낡은 것이 된 상태였고, 이에 미국의 뉴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중앙계획 공산주의 등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거대한 전환’이 벌어진 바 있었다. 비록 각자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와 정치적 목적은 모두 달랐고 그 실행 방법에서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전환적 사회 정책’이 나타났다는 점만큼은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처럼 이 과업에 늑장을 부리다가 실패했던 나라는 기술 전환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선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도 공통적이었다. 나아가 이 중 오직 다원적 견제(의회, 노조, 시민사회)를 유지한 채 전환을 이룬 나라들만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냈다는 것 역시 역사가 보여주는 냉정한 교훈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구상이 발표되었다. 부푼 희망과 심각한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교차하면서 사람들은 그 성패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예측도 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가 정말로 기술과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이루어 성공적인 산업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는 그 다른 쪽 절반인 ‘전환적 사회 정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할 것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그 액수에서나, 공간적 범위에 있어서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충격에 있어서나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건곤일척의 모험이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미증유의 ‘전환적 사회 정책’을 준비하여 내와야 한다.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의미를 담아 ‘뉴딜’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선거 이전부터 핵심 구호로 내걸었던 ‘AI 기본사회’라는 말 또한 이러한 ‘전환적 사회 정책’을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제목이다. 이제 그 내용을 채워 실행 계획으로 제시하고 첫 발자국을 떼야 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그때 비로소 모두가 고민하고 모두가 힘을 합치는 모두의 희망과 꿈이 될 것이다.
해부학 연구에 매진해온 김종중 조선대 명예교수의 유족이 김 교수의 시신을 조선대에 기증했다. 27일 조선대는 지난 13일 별세한 김 교수의 유족이 평소 고인의 의학 교육과 연구 뜻을 기려 시신을 조선대에 기증하고 발전기금 3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74년부터 2016년까지 38년간 조선대 의과대학에 재직하며 해부학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다. 제58대 대한해부학회장을 지냈다. 2007년 초대 민주화운동연구원장을 맡았다.
지금 관찰되는 세상의 변화는 언제 모습을 드러냈을까. 10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일이 생각난다. 이민자, 주권 같은 정치 이슈가 주목받았지만 가결을 예상하는 견해는 적었다. 당일 출구조사가 부결로 나온 것을 확인하고 관계부처 회의를 마쳤는데, 결과는 뒤집혔다. 52 대 48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선진국 내에 잠재돼 있던 대중의 불안, 분노를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6개월 뒤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자유무역, 다자주의 흐름이 주요국 민심에 의해 거부되는 신호였다. 오늘날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보호주의, ‘너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제로섬 정서가 2016년을 기점으로 불거졌다. 브렉시트는 이런 변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유럽의 극우정당, 전쟁과 지정학 부활이 같은 흐름에 있다.
브렉시트의 배경은 일면 단순하다. 중산서민층이 살기 힘들어진 것이다. 저성장과 지역 불균형 속에, 동유럽 이민자가 늘어나 일자리와 복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브렉시트 진영은 국경과 이민, 재정을 통제해야 한다(“Take Back Control”)는 구호를 내세웠다. EU 분담금 절약, 독자적인 무역협정, 규제 완화를 통해 성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영국과 EU 사이에 통관 절차와 비관세장벽이 생겨 대외거래 비용이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유럽시장 접근성도 낮아졌다. EU 노동자의 유입이 감소하면서 건설, 농업, 의료, 외식업에서 인력난이 발생했고, 나중에는 비EU 이민이 늘어났다.
2026 유고브 조사에서, 영국인 57%가 “EU 탈퇴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답은 30%에 그쳤다. 주권은 강화했지만 성장과 경쟁력은 약화됐고 자금과 인재가 유출됐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경제적 상호의존을 끊을 수 없었다. 영국인의 후회가 뼈아픈 것은 브렉시트가 가져올 비용과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선동과 단순 흑백론이 힘을 발휘했다. 실수했음을 알지만 되돌아가기도 어렵고, EU 재가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10년 새 7명의 총리가 취임한 것은 영국 사회의 불안정을 보여준다.
브렉시트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첫째, 경제와 사회가 작동하는 현실은 정치적 구호보다 훨씬 복잡하다. 브렉시트로 개혁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환상이었다. 이민자를 추방하고 주권을 되찾고 국경을 통제하자는 주장이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어도 나의 생활을 개선하지는 못한다. 편을 갈라 적을 설정하는 세력에 힘을 보태도,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중의 고통이 특정 소수집단 때문이라는 선동에 가장 능했던 것이 히틀러의 나치 아니었나. 한국에서도 종교, 인종, 출생지를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민주적 제도를 무시해도 된다는 주장이 발호할지 모른다.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켜온 한국적 전통이 소중한 이유다.
둘째, 한국은 영국보다 대외의존도가 높다. 돈과 사람과 기술의 흐름이 막히면 생존하기 어렵다. 단절을 선택할 여유가 없다. 경제안보, 산업정책, 전략산업 발전을 추진하되 무역과 공급망의 연결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 상대적 강점이 있어야 한다. 규제, 기업환경, 노동 관행·제도, 에너지 가격, 정책 속도를 경쟁국과 비교하면 된다. 외부의 눈으로 우리를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이 지브롤터(스페인 남단 영국령) 협약에서 EU 규범을 대부분 수용하고 무역과 노동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한 것은 브렉시트를 현실적으로 수정한 사례다.
셋째, 쏠림과 격차를 민감하게 봐야 한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의 혜택이 특정 계층과 지역에 집중되고 격차가 굳어지면서 촉발됐다.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고 느끼면 합리성은 선택에서 멀어진다. 브렉시트와 마가 운동이 세계화와 연관됐다면 최근의 격차는 인공지능(AI)이라는 혁명적 기술과 관련된다. 한국은 AI의 거대 흐름 속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지만 기업 실적과 주가, 개인의 취업과 보상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로 구분이 생기고 있다. FOMO(기회 상실 우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제 시작 단계이고 외국의 선례도 없다. 쏠림과 격차를 그대로 두고는 가장 앞서 달리던 우리가 먼저 좌초할지 모른다. 정부의 균형추 역할이 중요하다.
산업혁명의 충격이 처음 나타났던 19세기 이후로 기술의 발전은 스스로 벌어지는 독자적인 힘이며, 사회는 그저 거기에 따라 해체되고 재구성될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는 종속변수일 뿐 기술이야말로 독립변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은 실제로 벌어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업과 사회의 전환 과정을 절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산업사회란 SF만화에 나오는 사이보그처럼 기계와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한 몸으로 작동하는 존재다. 이는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에 의해 결정적으로 가로막히거나 추동되는 상호적 과정으로 돌아간다.
내키지 않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전쟁사를 돌아보자. 유럽에서 총포의 도입은 14세기 말에 이루어졌지만 전력에 있어서 큰 효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전쟁 방식과 군대의 조직 방식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일부의 병사가 화승총을 쓴다고 해봐야 그 효과가 석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유의미한 전력의 혁신은 1534년 카를 5세가 창병과 검병과 총병을 정교하게 결합한 테르시오 전법을 제도화하면서 나타났다. 하지만 총기의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나 군대 조직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20세기의 2차대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차대전 초입만 해도 칼을 쓰는 백병전이 전쟁의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기술 전환의 심도와 중요성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선례로 자주 언급되는 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도와 기차는 1830년대부터 운송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 있어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반세기가 지난 1870년대를 전후한 시점이다.
철도 산업이 그 막대한 생산적 잠재력을 풀어내어 거기에 들어간 막대한 투자에 대해 안정적인 수익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표준화되어야 하며 나아가 사회 전체까지 기차 시간표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시계처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 반경 몇십 ㎞ 바깥을 나갈 일이 없고 육상의 운송수단이라고 해봐야 역마차 정도였던 상태에서 몇천년을 살아온 문명사회가 여기에 금방 적응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물류 유통의 획기적인 변화, 기업 금융과 자본 시장과 노사 관계를 아우르는 경제제도 전체의 변화가 벌어져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철도의 투자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기술 전환 맞춰 사회적 전환 필요
가까운 예로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산성으로 이어졌던 과정을 돌아보자. 컴퓨터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보급되었지만 이는 기존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컴퓨터를 타자기 대용으로, 계산기 대용으로 기껏해야 회계 장부와 문서 정리에 사용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디지털 혁명에 걸맞은 방식으로 기업 전체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리엔지니어링’이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오면 기업 조직의 형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조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기술 전환에 조응하는 사회 및 조직 전환을 위하여 던지고 풀어야 할 핵심적인 질문들의 목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조직에서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둘째, 성원들의 역할과 직무는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셋째, 지식이 공유되는 방식은 어떠한가. 넷째, 개인과 집단 간의 신뢰와 표준은 어떻게 조성하고 설정할 것인가. 이를 기업 조직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차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고스란히 사회대개혁의 과제로 이어진다. 첫째, 국가와 시장, 자본과 노동, 상이한 여러 산업 부문 등의 사이에서 자원 배분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여기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기능을 어떻게 쇄신하고 확장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둘째,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생각해볼 때 사라지는 혹은 사라져야 할 임무와 새로이 생겨날 혹은 생겨나야 할 임무를 어떻게 정리하고 생성할 것인가. 이는 노동시장의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러 역할과 임무를 찾아낼 장치들의 준비를 뜻한다. 셋째, 지식의 성격은 무엇이고 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함께 활용하는 과정을 어떠한 체계로 확립할 것인가. 이는 교육제도의 정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형성과 접근에 대한 무수한 문제, 나아가 사회 전체의 지식 동원과 활용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과제로 던진다. 넷째, 모든 성원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면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에 적극적 자발적으로 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전환 비용의 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소득의 재분배와 혁신적 사회 정책을 마련하여 사회적 신뢰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제를 던진다.
다원적 견제 유지 속 전환 이뤄야
이러한 사회대개혁의 노력을 ‘전환적 사회 정책’으로 부르자. 이는 규모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평상시의 사회 정책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야심적인 발상을 요구하며 또 그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의 자원 동원을 요구한다. 1930년대의 경험이 그러했다. 중화학 공업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사회를 형성하는 과제에 있어서 19세기에 생겨난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형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낡은 것이 된 상태였고, 이에 미국의 뉴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중앙계획 공산주의 등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거대한 전환’이 벌어진 바 있었다. 비록 각자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와 정치적 목적은 모두 달랐고 그 실행 방법에서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전환적 사회 정책’이 나타났다는 점만큼은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처럼 이 과업에 늑장을 부리다가 실패했던 나라는 기술 전환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선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도 공통적이었다. 나아가 이 중 오직 다원적 견제(의회, 노조, 시민사회)를 유지한 채 전환을 이룬 나라들만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냈다는 것 역시 역사가 보여주는 냉정한 교훈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구상이 발표되었다. 부푼 희망과 심각한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교차하면서 사람들은 그 성패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예측도 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가 정말로 기술과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이루어 성공적인 산업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는 그 다른 쪽 절반인 ‘전환적 사회 정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할 것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그 액수에서나, 공간적 범위에 있어서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충격에 있어서나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건곤일척의 모험이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미증유의 ‘전환적 사회 정책’을 준비하여 내와야 한다.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의미를 담아 ‘뉴딜’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선거 이전부터 핵심 구호로 내걸었던 ‘AI 기본사회’라는 말 또한 이러한 ‘전환적 사회 정책’을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제목이다. 이제 그 내용을 채워 실행 계획으로 제시하고 첫 발자국을 떼야 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그때 비로소 모두가 고민하고 모두가 힘을 합치는 모두의 희망과 꿈이 될 것이다.
해부학 연구에 매진해온 김종중 조선대 명예교수의 유족이 김 교수의 시신을 조선대에 기증했다. 27일 조선대는 지난 13일 별세한 김 교수의 유족이 평소 고인의 의학 교육과 연구 뜻을 기려 시신을 조선대에 기증하고 발전기금 3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74년부터 2016년까지 38년간 조선대 의과대학에 재직하며 해부학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다. 제58대 대한해부학회장을 지냈다. 2007년 초대 민주화운동연구원장을 맡았다.
지금 관찰되는 세상의 변화는 언제 모습을 드러냈을까. 10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일이 생각난다. 이민자, 주권 같은 정치 이슈가 주목받았지만 가결을 예상하는 견해는 적었다. 당일 출구조사가 부결로 나온 것을 확인하고 관계부처 회의를 마쳤는데, 결과는 뒤집혔다. 52 대 48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선진국 내에 잠재돼 있던 대중의 불안, 분노를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6개월 뒤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냉전 종식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자유무역, 다자주의 흐름이 주요국 민심에 의해 거부되는 신호였다. 오늘날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보호주의, ‘너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제로섬 정서가 2016년을 기점으로 불거졌다. 브렉시트는 이런 변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유럽의 극우정당, 전쟁과 지정학 부활이 같은 흐름에 있다.
브렉시트의 배경은 일면 단순하다. 중산서민층이 살기 힘들어진 것이다. 저성장과 지역 불균형 속에, 동유럽 이민자가 늘어나 일자리와 복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브렉시트 진영은 국경과 이민, 재정을 통제해야 한다(“Take Back Control”)는 구호를 내세웠다. EU 분담금 절약, 독자적인 무역협정, 규제 완화를 통해 성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영국과 EU 사이에 통관 절차와 비관세장벽이 생겨 대외거래 비용이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유럽시장 접근성도 낮아졌다. EU 노동자의 유입이 감소하면서 건설, 농업, 의료, 외식업에서 인력난이 발생했고, 나중에는 비EU 이민이 늘어났다.
2026 유고브 조사에서, 영국인 57%가 “EU 탈퇴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답은 30%에 그쳤다. 주권은 강화했지만 성장과 경쟁력은 약화됐고 자금과 인재가 유출됐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경제적 상호의존을 끊을 수 없었다. 영국인의 후회가 뼈아픈 것은 브렉시트가 가져올 비용과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선동과 단순 흑백론이 힘을 발휘했다. 실수했음을 알지만 되돌아가기도 어렵고, EU 재가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10년 새 7명의 총리가 취임한 것은 영국 사회의 불안정을 보여준다.
브렉시트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첫째, 경제와 사회가 작동하는 현실은 정치적 구호보다 훨씬 복잡하다. 브렉시트로 개혁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환상이었다. 이민자를 추방하고 주권을 되찾고 국경을 통제하자는 주장이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어도 나의 생활을 개선하지는 못한다. 편을 갈라 적을 설정하는 세력에 힘을 보태도,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중의 고통이 특정 소수집단 때문이라는 선동에 가장 능했던 것이 히틀러의 나치 아니었나. 한국에서도 종교, 인종, 출생지를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민주적 제도를 무시해도 된다는 주장이 발호할지 모른다.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켜온 한국적 전통이 소중한 이유다.
둘째, 한국은 영국보다 대외의존도가 높다. 돈과 사람과 기술의 흐름이 막히면 생존하기 어렵다. 단절을 선택할 여유가 없다. 경제안보, 산업정책, 전략산업 발전을 추진하되 무역과 공급망의 연결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 상대적 강점이 있어야 한다. 규제, 기업환경, 노동 관행·제도, 에너지 가격, 정책 속도를 경쟁국과 비교하면 된다. 외부의 눈으로 우리를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이 지브롤터(스페인 남단 영국령) 협약에서 EU 규범을 대부분 수용하고 무역과 노동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한 것은 브렉시트를 현실적으로 수정한 사례다.
셋째, 쏠림과 격차를 민감하게 봐야 한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의 혜택이 특정 계층과 지역에 집중되고 격차가 굳어지면서 촉발됐다.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고 느끼면 합리성은 선택에서 멀어진다. 브렉시트와 마가 운동이 세계화와 연관됐다면 최근의 격차는 인공지능(AI)이라는 혁명적 기술과 관련된다. 한국은 AI의 거대 흐름 속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지만 기업 실적과 주가, 개인의 취업과 보상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로 구분이 생기고 있다. FOMO(기회 상실 우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제 시작 단계이고 외국의 선례도 없다. 쏠림과 격차를 그대로 두고는 가장 앞서 달리던 우리가 먼저 좌초할지 모른다. 정부의 균형추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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