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이번에도 당심이 의심 이긴다”···김민석 측 “당원주권은 분열의 도구 아니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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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행복이이 연락처 연락처 : E-mail E-mail : djnfgsdj344hg@naver.com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8-02 17:37본문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인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전당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당심(당원 표심) 대 의심(의원 표심) 대결 구도 띄우기에 나섰다. 경쟁자인 김민석 의원에 대한 상당수 의원의 지지를 구태로 몰고 당락의 키를 쥔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구태 정치”라고 맞받았다.
김 의원을 돕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심과 의심을 갈라놓지 말라”며 “당원주권은 분열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당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원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 의원이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이번에도 당심이 의심을 이긴다”며 “160만 권리당원이 160명 국회의원을 이긴다”고 밝힌 데 대해 공개 반박한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세종시 해밀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도 “(저와) 심리적 일체감을 형성한 당원들이 많이 있다”며 당심 부각에 나섰다.
의원 지지가 약세인 정 의원이 당심 대 의심 대결 구도를 재연하는 데에는 언더독(도전자) 이미지를 굳히며 당원 표를 최대한 끌어모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이 승리한 지난해 전당대회는 당심이 의심을 누른 선거로 평가됐다. 당시 정 의원은 55%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6.5%를 얻어, 15%가 반영되는 국회의원 등 대의원 투표에서 53.1%를 획득한 박찬대 당시 의원(현 인천시장)을 제쳤다.
이런 전략 하에서 정 의원 측은 김 의원이 중앙 정치인 지원 사격을 집중적으로 받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정 의원 지지자들이 모인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김 의원을 지지해 달라는 국회의원, 시의원 등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를 캡처해 올리는 글이 이어졌다.
김 의원 측은 당심과 의심은 분리되지 않는다며 정 의원이 띄우려는 대결 구도 지우기에 나섰다. 김 의원은 이날 경남 창원대에서 열린 권리당원 강연회에서 “당원들의 지혜로운 집단지성이, 당이 올바로 가야 할 방향을 제가 제시한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며 “저는 당원들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 캠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정 의원이 계파 정치를 안 하고 통합한다면서 의원과 당원을 갈라치기 하는 구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의원이 급한지 이번엔 대립 구도를 넘어 싸움을 붙여 놓는다”며 “정 의원의 당대표 1년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가 있는 만큼 대결 구도를 계속 미는 건 패착이라 본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 의원 단체 온라인 대화방에서는 지난 26일 정 의원의 게시글을 두고 “의원 1명에 권리당원 만 명씩 패싸움을 시키는 것이냐” “모택동이 연상된다”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다만 당내 일각에선 이 같은 대결 구도가 부각되는 것 자체가 김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김 의원이 이번 선거의 대결 구도를 ‘정청래 대 이재명’으로 확고히 해야 한다”며 “정부를 뒷받침할 적임자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정 의원이 되면 이 대통령 레임덕이 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의원 표심은 김 의원에게 치우쳐 있으나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 가치를 같게 하는 1인1표제가 적용되면서 의원·지역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대의원·권리당원들이 따라가는 흐름을 더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대의원과 권리당원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당대표가 선출된다. 한 재선 의원은 “1인1표 (시행) 이전엔 의원들이 대의원을 통해 (지역 당원) 관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치 용어 가운데 하나는 ‘실용’ 또는 ‘실용적’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를 논할 때도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실용을 현 정부의 중요한 국정 기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역대 정권은 출범할 때마다 저마다의 국정 지표와 시대적 구호를 내세웠다.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처럼 깊은 인상을 남긴 구호도 있었지만,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이나 윤석열 정권의 ‘반지성주의의 극복’처럼, 실제 정치 행태를 통해 스스로 내세운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희화화된 구호도 있었다.
우리말 속담인 ‘꿩 잡는 게 매’는 실용의 의미를 쉽게 설명해준다. 이재명 대통령도 인용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도 마찬가지다. 고양이가 검든 희든 중요한 것은 쥐를 잘 잡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두 표현은 수단의 명분이나 형식보다 결과와 효용을 중시하는 실용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용은 1870년대 미국에서 철학적 사조로 등장한 프래그머티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남북전쟁의 참혹한 경험과 급속한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프래그머티즘은 단순히 ‘효과만 있으면 된다’는 정책적 편의주의였을까. 실용주의의 빛은 경험을 통해 정책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데 있지만, 그 그림자는 가치와 목적까지 효율성의 이름으로 상대화할 때 나타난다.
프래그머티즘이 등장하기 한 세대 전,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훗날 이 철학과 친화성을 보일 미국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포착했다. 그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철학 체계보다 직접적인 경험과 실제 성과를 중시했다. 전통이나 권위보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했고, 이론의 완결성보다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적 사고방식과 철학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전자가 미국 사회의 생활 태도와 정신적 습속이라면, 후자는 관념의 의미와 진리의 타당성을 경험과 실천의 결과 속에서 검증하려는 철학적 시도였다. 프래그머티즘은 단순한 행동주의나 결과 중심의 편의주의가 아니라, 사고와 지식이 구체적 경험 및 실천과 맺는 관계를 해명하려는 철학이었다.
실용주의 핵심은 끊임없는 수정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을 대표하는 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의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퍼스는 관념의 의미를 그것이 낳을 실천적 효과를 통해 밝히려 했고, 제임스는 관념과 믿음이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중시했다. 듀이는 사고를 환경 속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을 재구성하는 탐구 과정으로 이해했다.
세 철학자는 관념과 진리를 경험과 실천에서 분리된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성공한 수단을 선택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판단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공동의 경험과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는 데 있었다.
유럽에서는 미국 철학과 문화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실용적이라는 회의가 강했지만, 영국의 퍼디낸드 캐닝 스콧 실러처럼 프래그머티즘을 인간의 경험과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휴머니즘’으로 발전시킨 옹호자도 있었다. 반면 버트런드 러셀은 진리의 객관적 타당성과 실제적 효용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임스가 말한 유용성이 개인적 편익을 뜻하지 않더라도, 어떤 믿음이 유용하다는 것과 참이라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별이 사라질 경우 불편한 진실보다 유익한 거짓을 선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래그머티즘 자체보다 그것이 효율성 중심의 사고로 축소될 위험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실용성과 효율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의 위험을 지적했다. 이성이 주어진 목적을 달성할 수단만 계산하게 되면 목적 자체의 정당성과 그 배후의 사회적 지배관계를 묻지 않게 된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비판한 ‘도구적 이성’은 이를 가리킨다. 이 비판은 고전적 프래그머티즘 전체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었지만, 실용이 목적의 정당성을 묻지 않는 수단적 효율성으로 축소될 때 생기는 문제를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제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도구적 이성 비판을 계승하면서도 퍼스의 탐구공동체와 듀이의 민주적 경험론에서 중요한 자원을 발견했다. 진리는 고립된 개인의 확신이 아니라 공동의 탐구와 논증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그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담론이론에 중요한 철학적 자원을 제공했다.
동아시아에서 프래그머티즘은 주로 근대화와 사회개혁을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수용되었다. 중국에서는 듀이의 제자 후스(胡適)가 이를 신문화운동과 교육개혁에 적용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회피하는 부르주아적 점진개혁론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듀이의 교육사상과 민주주의론이 교육개혁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미군정기 이후 듀이가 주로 경험중심·생활중심 교육의 이론가로 소개되었지만, 그의 참여민주주의론과 민주적 공중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이러한 철학사적 논의는 실용주의가 단순히 ‘결과가 좋으면 수단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은 관념과 정책이 현실에서 낳는 결과를 검증하고, 잘못된 결과가 드러나면 기존의 믿음과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실용주의에는 결과를 중시하는 현실주의뿐 아니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도 포함된다. 특히 퍼스와 듀이에게 중요한 결과란 당장의 성공이나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 공동의 탐구와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는 장기적이고 공적인 귀결에 가깝다.
원칙과 기준 분명하게 제시돼야
이러한 차이는 정치에서 실용이 덕목이 되는 경우와 편의주의로 전락하는 경우를 가른다. 실용이 이념적 경직성을 벗어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며 시민의 구체적 삶을 개선하려는 태도라면 민주정치의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성과와 권력 유지에 유리한 수단을 선택하는 데 그치고, 그 수단의 도덕적·법적 정당성과 장기적인 사회적 결과를 묻지 않는다면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로 전락한다.
꿩을 잡는 매나 쥐를 잡는 고양이가 유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결과만으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 무엇을 잡으려 하는지, 왜 잡아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희생되는지, 그 결과가 민주주의 원칙과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도 이러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검찰개혁에서는 가시적 성과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새로 설치되거나 재편되는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 간 권한 배분과 인사권의 독립성, 민주적 통제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더라도 인사권과 지휘구조가 행정부에 집중된다면 권력기관 개혁이 아니라 기관의 이름만 바꾸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당장의 경제안보 요구와 장기적인 외교적 자율성이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지가 시험대가 될 것이다. 원칙과 기준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다면 실용주의는 그때그때의 입장을 편리하게 포장하는 정치적 셈법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실용정부인지 여부는 정책을 얼마나 자주 바꾸느냐가 아니라, 왜 바꾸었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실패의 증거를 인정하며 수정 과정에 시민과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키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념적 진영논리보다 민생의 구체적 성과를 앞세우고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태도는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유연성은 기준의 부재를 뜻하지 않으며, 정책 수정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공개적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실용은 가치와 목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치를 구체적 현실로 옮기는 지혜여야 한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의 성패 역시 이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 보인고 선수들이 30일 충북 제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9회 대통령금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충남 신평고를 꺾은 뒤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김 의원을 돕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심과 의심을 갈라놓지 말라”며 “당원주권은 분열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당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원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 의원이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이번에도 당심이 의심을 이긴다”며 “160만 권리당원이 160명 국회의원을 이긴다”고 밝힌 데 대해 공개 반박한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세종시 해밀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도 “(저와) 심리적 일체감을 형성한 당원들이 많이 있다”며 당심 부각에 나섰다.
의원 지지가 약세인 정 의원이 당심 대 의심 대결 구도를 재연하는 데에는 언더독(도전자) 이미지를 굳히며 당원 표를 최대한 끌어모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이 승리한 지난해 전당대회는 당심이 의심을 누른 선거로 평가됐다. 당시 정 의원은 55%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6.5%를 얻어, 15%가 반영되는 국회의원 등 대의원 투표에서 53.1%를 획득한 박찬대 당시 의원(현 인천시장)을 제쳤다.
이런 전략 하에서 정 의원 측은 김 의원이 중앙 정치인 지원 사격을 집중적으로 받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정 의원 지지자들이 모인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김 의원을 지지해 달라는 국회의원, 시의원 등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를 캡처해 올리는 글이 이어졌다.
김 의원 측은 당심과 의심은 분리되지 않는다며 정 의원이 띄우려는 대결 구도 지우기에 나섰다. 김 의원은 이날 경남 창원대에서 열린 권리당원 강연회에서 “당원들의 지혜로운 집단지성이, 당이 올바로 가야 할 방향을 제가 제시한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며 “저는 당원들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 캠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정 의원이 계파 정치를 안 하고 통합한다면서 의원과 당원을 갈라치기 하는 구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의원이 급한지 이번엔 대립 구도를 넘어 싸움을 붙여 놓는다”며 “정 의원의 당대표 1년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가 있는 만큼 대결 구도를 계속 미는 건 패착이라 본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 의원 단체 온라인 대화방에서는 지난 26일 정 의원의 게시글을 두고 “의원 1명에 권리당원 만 명씩 패싸움을 시키는 것이냐” “모택동이 연상된다”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다만 당내 일각에선 이 같은 대결 구도가 부각되는 것 자체가 김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김 의원이 이번 선거의 대결 구도를 ‘정청래 대 이재명’으로 확고히 해야 한다”며 “정부를 뒷받침할 적임자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정 의원이 되면 이 대통령 레임덕이 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의원 표심은 김 의원에게 치우쳐 있으나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 가치를 같게 하는 1인1표제가 적용되면서 의원·지역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대의원·권리당원들이 따라가는 흐름을 더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대의원과 권리당원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당대표가 선출된다. 한 재선 의원은 “1인1표 (시행) 이전엔 의원들이 대의원을 통해 (지역 당원) 관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치 용어 가운데 하나는 ‘실용’ 또는 ‘실용적’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를 논할 때도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실용을 현 정부의 중요한 국정 기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역대 정권은 출범할 때마다 저마다의 국정 지표와 시대적 구호를 내세웠다.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처럼 깊은 인상을 남긴 구호도 있었지만,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이나 윤석열 정권의 ‘반지성주의의 극복’처럼, 실제 정치 행태를 통해 스스로 내세운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희화화된 구호도 있었다.
우리말 속담인 ‘꿩 잡는 게 매’는 실용의 의미를 쉽게 설명해준다. 이재명 대통령도 인용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도 마찬가지다. 고양이가 검든 희든 중요한 것은 쥐를 잘 잡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두 표현은 수단의 명분이나 형식보다 결과와 효용을 중시하는 실용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용은 1870년대 미국에서 철학적 사조로 등장한 프래그머티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남북전쟁의 참혹한 경험과 급속한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프래그머티즘은 단순히 ‘효과만 있으면 된다’는 정책적 편의주의였을까. 실용주의의 빛은 경험을 통해 정책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데 있지만, 그 그림자는 가치와 목적까지 효율성의 이름으로 상대화할 때 나타난다.
프래그머티즘이 등장하기 한 세대 전,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훗날 이 철학과 친화성을 보일 미국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포착했다. 그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철학 체계보다 직접적인 경험과 실제 성과를 중시했다. 전통이나 권위보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했고, 이론의 완결성보다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적 사고방식과 철학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전자가 미국 사회의 생활 태도와 정신적 습속이라면, 후자는 관념의 의미와 진리의 타당성을 경험과 실천의 결과 속에서 검증하려는 철학적 시도였다. 프래그머티즘은 단순한 행동주의나 결과 중심의 편의주의가 아니라, 사고와 지식이 구체적 경험 및 실천과 맺는 관계를 해명하려는 철학이었다.
실용주의 핵심은 끊임없는 수정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을 대표하는 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의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퍼스는 관념의 의미를 그것이 낳을 실천적 효과를 통해 밝히려 했고, 제임스는 관념과 믿음이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중시했다. 듀이는 사고를 환경 속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을 재구성하는 탐구 과정으로 이해했다.
세 철학자는 관념과 진리를 경험과 실천에서 분리된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성공한 수단을 선택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판단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공동의 경험과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는 데 있었다.
유럽에서는 미국 철학과 문화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실용적이라는 회의가 강했지만, 영국의 퍼디낸드 캐닝 스콧 실러처럼 프래그머티즘을 인간의 경험과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휴머니즘’으로 발전시킨 옹호자도 있었다. 반면 버트런드 러셀은 진리의 객관적 타당성과 실제적 효용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임스가 말한 유용성이 개인적 편익을 뜻하지 않더라도, 어떤 믿음이 유용하다는 것과 참이라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별이 사라질 경우 불편한 진실보다 유익한 거짓을 선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래그머티즘 자체보다 그것이 효율성 중심의 사고로 축소될 위험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실용성과 효율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의 위험을 지적했다. 이성이 주어진 목적을 달성할 수단만 계산하게 되면 목적 자체의 정당성과 그 배후의 사회적 지배관계를 묻지 않게 된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비판한 ‘도구적 이성’은 이를 가리킨다. 이 비판은 고전적 프래그머티즘 전체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었지만, 실용이 목적의 정당성을 묻지 않는 수단적 효율성으로 축소될 때 생기는 문제를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제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도구적 이성 비판을 계승하면서도 퍼스의 탐구공동체와 듀이의 민주적 경험론에서 중요한 자원을 발견했다. 진리는 고립된 개인의 확신이 아니라 공동의 탐구와 논증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그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담론이론에 중요한 철학적 자원을 제공했다.
동아시아에서 프래그머티즘은 주로 근대화와 사회개혁을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수용되었다. 중국에서는 듀이의 제자 후스(胡適)가 이를 신문화운동과 교육개혁에 적용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회피하는 부르주아적 점진개혁론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듀이의 교육사상과 민주주의론이 교육개혁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미군정기 이후 듀이가 주로 경험중심·생활중심 교육의 이론가로 소개되었지만, 그의 참여민주주의론과 민주적 공중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이러한 철학사적 논의는 실용주의가 단순히 ‘결과가 좋으면 수단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은 관념과 정책이 현실에서 낳는 결과를 검증하고, 잘못된 결과가 드러나면 기존의 믿음과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실용주의에는 결과를 중시하는 현실주의뿐 아니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도 포함된다. 특히 퍼스와 듀이에게 중요한 결과란 당장의 성공이나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 공동의 탐구와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는 장기적이고 공적인 귀결에 가깝다.
원칙과 기준 분명하게 제시돼야
이러한 차이는 정치에서 실용이 덕목이 되는 경우와 편의주의로 전락하는 경우를 가른다. 실용이 이념적 경직성을 벗어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며 시민의 구체적 삶을 개선하려는 태도라면 민주정치의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성과와 권력 유지에 유리한 수단을 선택하는 데 그치고, 그 수단의 도덕적·법적 정당성과 장기적인 사회적 결과를 묻지 않는다면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로 전락한다.
꿩을 잡는 매나 쥐를 잡는 고양이가 유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결과만으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 무엇을 잡으려 하는지, 왜 잡아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희생되는지, 그 결과가 민주주의 원칙과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도 이러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검찰개혁에서는 가시적 성과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새로 설치되거나 재편되는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 간 권한 배분과 인사권의 독립성, 민주적 통제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더라도 인사권과 지휘구조가 행정부에 집중된다면 권력기관 개혁이 아니라 기관의 이름만 바꾸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당장의 경제안보 요구와 장기적인 외교적 자율성이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지가 시험대가 될 것이다. 원칙과 기준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다면 실용주의는 그때그때의 입장을 편리하게 포장하는 정치적 셈법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실용정부인지 여부는 정책을 얼마나 자주 바꾸느냐가 아니라, 왜 바꾸었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실패의 증거를 인정하며 수정 과정에 시민과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키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념적 진영논리보다 민생의 구체적 성과를 앞세우고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태도는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유연성은 기준의 부재를 뜻하지 않으며, 정책 수정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공개적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실용은 가치와 목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치를 구체적 현실로 옮기는 지혜여야 한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의 성패 역시 이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 보인고 선수들이 30일 충북 제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9회 대통령금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충남 신평고를 꺾은 뒤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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